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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완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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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종수
김종수 기자 중앙일보 부장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세월호 참사 이후 사고 원인으로 과도한 규제완화를 꼽는 주장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이명박 정부가 2009년 규제완화를 앞세워 여객선의 선령(船齡)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리는 바람에 일본에서 선령 18년 만에 퇴역한 낡은 선박을 수입해 운항하도록 했다는 지적이다. 규제완화 반대론자들은 즉각 사고 원인을 싸잡아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완화 탓’으로 몰아갔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업이익을 극대화하고 경제활성화를 위해 규제완화를 전면에 내건 정부는 기업의 규제완화 요구에 자신의 역할을 포기했다”며 “지금은 규제완화의 광풍을 멈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세월호 사고가 전적으로 규제완화 조치 때문에 일어났으니 정부의 규제완화 방침을 전면 철회하라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정부는 일언반구 대응조차 못하다가 겨우 “소비자 보호나 안전 등의 분야에서 무분별하게 규제를 풀지 않겠다”고 했다. 얼핏 소비자 보호나 안전과 관련된 분야의 규제는 풀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밖의 규제는 당초 계획대로 풀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월호 사고 이전에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해온 규제개혁 정책은 사실상 추진동력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아직 사고가 완전히 수습되지 않아 다른 정책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이 판에 규제개혁 강행을 주장할 만큼 간이 큰 관료는 없기 때문이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이번 기회에 안전의식을 철저히 개혁하는 대책과 함께 안전을 위협하는 비정상 관행과 제도, 규정을 전수 조사해 목록화하고 개선대책을 마련하라”고 각 부처에 지시했다. 안전과 관련된 규제완화는 전면 중단하라는 지시나 다름없다. 그러자 국토부는 “도로, 철도, 항공, 건축, 특수구조물 등의 안전과 관련된 법과 제도는 아예 규제완화 대상에서 제외하고, 일부 안전규제는 오히려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규제완화의 중단에 이어 새로운 규제의 도입마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규제개혁 관련 작업과 회의는 사실상 중단되거나 취소됐다. 지난 3월 대통령 주재로 7시간에 걸쳐 생중계됐던 규제개혁장관회의는 언제 다시 열릴지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6월로 예정된 무역투자진흥회의도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여기서 잠시 규제완화가 이번 세월호 참사의 최대 원인이고, 따라서 모든 규제완화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옳은지를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세월호 사고가 선령 제한을 완화했기 때문에 빚어졌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사고원인을 전적으로 선박의 노후화 탓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선체나 항해설비의 노후화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 무리한 화물과적과 잘못된 적재방식, 규정을 어긴 평형수 방출 등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인다. 선령 제한 완화로 인한 선박의 노후화 때문이 아니라 운항과 관련된 규제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선박회사는 돈벌이에 눈이 멀어 안전규제를 하나도 지키지 않았고, 이를 확인해야 할 감독 기능 역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노후 선박이 신형 선박보다 사고의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겠지만 아무리 신형 선박이라도 운항 관련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고 무리하게 운항한다면 규정을 지킨 노후 선박보다 사고의 위험은 훨씬 크다. 요컨대 이번 사고는 규제가 없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있는 규제를 지키지 않아서 일어난 것이란 얘기다.

 여기서 이번 사고의 원인을 또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규제가 안전을 보장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연안여객선의 운임은 신고제지만 사실상 정부가 정해주는 규제가격이다. 실제로 항만청은 4~5년에 한 번씩 운임을 조정해준다고 한다. 정부가 정해준 운임으로 채산이 맞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규제가격은 늘 시장가격을 밑돌기 마련이다. 이런 규제 속에서 여객선 사업을 하려면 객실을 편법으로 증축하고, 규정을 어겨서라도 화물을 과적하고, 저임금의 부적격 선원을 쓸 수밖에 없다. 또 이런 불법과 편법행위를 계속하려면 감독기관과 결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여기서 퇴직 공무원이 낙하산으로 내려온 위탁감독기관들과의 유착과 비리가 싹튼다. 이 장면에서 가격규제와 안전규제는 공무원과 퇴직 공무원, 업계가 공생할 수 있는 최상의 먹이사슬로 결합된다. 규제는 이른바 관피아와 업계가 공생하는 터전이 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새로운 규제를 늘려봐야 안전이 강화될 리 없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세월호 참사를 빌미로 모든 규제완화를 중단하고, 새로운 규제를 신설하자는 주장은 심각한 논리의 비약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규제완화라고 해서 안전과 관련된 규제까지 풀자는 것이 아니다. 안전 관련 규제완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맞다. 다만 싸잡아서 모든 규제완화가 악이고 만병의 근원이라고 몰아 정부의 규제개혁 방침이 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규제혁파의 필요성과 시급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저성장을 극복하고 미래세대가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는 것 또한 국민의 안전만큼 중요한 일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