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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복고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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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만이 아니다. 이제는 지방도시에까지 복고바람이 속속들이 스몄다. 웬만한 중류이상의 가정에선 이른바 골동품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늘어놓고 자랑삼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장롱·반닫이·문갑·경대 같은 목가구나 나막신·베틀북·화로·떡살 같은 민속품, 혹은 도자기·서고·자수품 등 무엇이건 「예스런 물건」이면 문화재나 되는 양 소중히 치레 삼는 풍조.

<갑자기 기형적인「붐」>
물론 이런 풍조자체가 나쁘다고 일축할 것은 없겠지만 갑자기 기형적인「붐」이 일다보니 풍문도 구구하고 「난센스」도 가지가지다.
일확천금의 꿈이라든가 가짜 소동쯤은 예삿일이고 엉뚱한「지식」들이 개개의 가정에 침투돼 다채로운 후문을 남기고 있다.
고가의 옛 목 가구를 「스팀」완비의 「아파트」에 갖다놓자 서랍이 뒤틀리고 목재가 쩍쩍 벌어져 즉시 가게에 되돌려주며 호통쳤다는 어느 젊은 부인의 얘기. 한때는 서울로 집중되던 골동품들이 얼마 전부터는 지방도시로 역류돼 일부상인들이 재미를 톡톡히 봤다는 얘기.
「아마추어·컬렉터」가 시골을 돌아다니며 「횡재 잡으러」갔다가 오히려 「설교」만 잔뜩 듣고 왔다는 얘기. 모 민속조사반이 벽촌에서 옛 가구 얘기를 꺼냈다가 골동품수집상으로 오인 받아 진땀을 뺀 얘기도 있다.
조상의 때묻은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풍조는 이웃 일본을 따를 수가 없다. 일본 전역에는 하찮은 골동품까지 모아 놓은 집 고관·박물관이 수천 개를 헤아리고 집집마다「옛 것」을 가보처럼 여긴다. 이에 비겨보자면 우리 나라는 지난 수10년 동안 주로 버리는 데만 힘써온 셈이라고나 할까.
개화되자 우리는 「박래품」에 반해버렸고 특히 「메이드·인·유·에스·에이」에는 절대적인 가치를 퍼부어 왔다. 종래 써오던 「우리의 것」은 곰팡내 나는 것이라며 실컷 학대해 왔다는 사실 등은 누구도 부인 못할 솔직한 평가가 아닐까.
그런데 어느결엔가 그 『곰팡내 나고 때전 고물』이 일약 귀중품으로 격상되고 너도나도 골동품 모으기에 혈안이 됐다.
그 골동품들의 대표적 집산지가 바로 서울의 인사동거리.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이 거리는 「쇼·윈도」를 기웃거리는 사람들로 『눈에 띄지 않는 성시』를 이룬다.
새로「큰 집」을 마련해 「장식거리」를 찾는 신흥부유층들, 외국인「바이어」들에게 선물할「동양냄새 물씬 풍기는 고물」을 구하는 무역상사직원들, 그밖에 호기심에 덩달아 기웃거리는 사람 등, 특히 이들은 주로 남성들보다 부인 층이 많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공통된 얘기다.

<웬만한 집엔 한두 점씩>
이곳 수10개의 골동품상들이 갖추고있는 물건들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주종을 이루는 목 가구·도자기·점화류 등으로부터 문갑·판본·등잔·절구통·돈궤 등은 물론 물레·말안장·나막신·구유·수본·안경집·가위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
우리 나라에 이 같은 소위 복고「붐」이 불어닥친 것은 불과10년도 채 못된다.
그것도 처음에는 도자기류나 서화에 국한 됐던 것이 근래는 고물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골동품수집「붐」이 들어 닥친 후 이제는 웬만한 집에 가봐도 골동품 한두 점 장식 안한 집이 없다. 요즈음 한창 경기를 맞은 「인테리어」장식품들로서는 부족한 탓일까. 옛 가구 몇 개에 벽마다 고서화 몇 점과 노리개를 걸어놓고 앞마당에는 석련지 맷돌·괴석까지 늘어놓아 옛 흥취를 살리려 하고 있다.
절구통에 유리만을 씌워 응접탁자로 사용한다든지 돈궤를 「티·테이블」로 변용 하는 등 새로운「아이디어」들도 "적지 않게 등장, 애교 있는(?) 복고 취미로 유행되기도 한다.
어떻든 이와 같은 맹렬한 복고「붐」은 골동품을 바닥냈다. 『이제는 정말 값싸고 좋은 골동품은 구경하기도 어렵고 시골에서도 공급이 달려 품귀상태입니다. 그 대신 모조품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어요. 인사동에서 목 가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D상점주인 박준호씨는 이같이 밝히면서 『20여년 해온 이 장사도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모조품이 진짜행세>
골동품이라면 무조건 수집해 저장, 진열해 놓는 무정견한 유행심리는 물론「문화병적 전시욕구」로 꼬집히기도 하지만 우리 것을 보존하고 외국으로 유출시키지 않는 효과에는 상당한 의의도 있을 듯.
얼마 전 미국을 돌아보고 온 성찬경 교수(덕성여대)는 인공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의 부피」에 오랜 역사민족으로서 큰 긍지를 느꼈다며 이같이 전한다. 『역사가 일천한 미국인들은 불과 1백여년 전의 하찮은 골동품도 굉장히 자랑하곤 해요. 또 고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들에 비해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불과 20만∼30만원으로도 이조백자 한두 점 가질 수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특히 요즘에는 값싸고 실용적인 모조도자기가 많이 생산돼 골동품과 같은 흥취를 느낄 수도 있어 궤도를 이탈한 듯한 복고취미「붐」에 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 법도하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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