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가락」지켜 70성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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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산 박헌봉 형(71)이 8일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접하니 애통한 마음 그지없다. 형은 일찍이 민속악 중에서도 특히. 판소리 장단이며 가야금 산조와 정의 등을 섭렵했다.
8·15해방 뒤에는 재야의 민속악인들을 규합하여 대한 국악원을 창설하셨고 그 원장·부원장으로 창극운동과 민속악재건에 온갖 정열을 쏟아왔다. 60년에는 한국 국학예술학교를 창설하여 초대 교장으로 취임, 국악교육에도 남다른 힘을 쏟았다.
문화재위원으로 사멸해 가는 전통 국악의 보존과 전수에 힘쓰신 것도 우리는 모두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환갑나이에 녹음기를 둘러메고 오늘은 충청도, 내일은 전라도, 모레는 경상도를 누비며 국악채집에 열심이시던 그가 오로지 국악만을 위해 사시었음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이었다.
기산 수연에 부친 박목월의 시처럼 70평생을 『누구의 것이랄 것도 없는, 겨레의 가락을 보듬어』『수굿하게』『고스란히』잘도 견디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기산과의 첫 상면은 39년대 이왕직 아악 부에서 함께 일하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해방 뒤로 요즈음까지 30년, 때로 소원이 없지도 않았으나 둘의 밑바닥을 흐르는 우의 같은 건 별로 변하지 않고 지속시켜왔던 것 같다.
국악에 대한 형의 그간의 공로는 금관 문화훈장과 국민훈장(동백장), 서울시문화상을 수상케 했는데 이는 형의 그 큰 공로에 대한 사회의 자그마한 보답일 뿐이었다.
이제 국악 창달의 시기가 눈앞에 다다른 즈음, 좀더 사셔서 좋은 시절을 못 보는 것이 애통할 다름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성경린(전 국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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