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의 폐지론까지 몰고 온 전수상 여비서의 치맛바람-영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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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런던=박중희특파원】이렇게 귀족들의 권위가 조각이 난대서야 정말 『그런 귀족원 없애버리자』라는 말이 나오게도 되긴 됐다. 요 며칠째 영국의 전 「매스컴」들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영국만 「비서정치」소동 속에서 제일 얻어맞은 것은 귀족원의 체면이래도 조금도 과언은 아니다.
비서정치소동이란 작년 봄 갑작스레 수장자리를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던 「윌슨」씨의 여비서가 비서답지 않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한 측근자의 폭로가 일으킨 풍파를 두고 하는 얘기다.
그 발단은 「윌슨」씨의 공보비서로 있던 「조·헤인즈」씨각 최근 「윌슨」내각의 이면상을 소개하는 한 신간책자 속에서 같은 동료비서 「마르샤·윌리엄즈」여사가 「윌슨」정부의 소위 「부엌내각」에서 엄청난 「치맛바람」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데 있다. 「윌슨」씨는 사임직전에 수상의 특권으로서 일단의 저명인사들에게 종신귀족 작위를 줄 때 이 「윌리엄즈」여비서의 입김이 압도적으로 작용했다고 이 책은 주장하고 있다. 이런 엄청난 주장에 그녀 또한 가만히 앉아 듣고만 있지 않았다.
결국 서로 흙탕물을 튀기는 인신공격으로까지 번진 이 싸움은 요즘 얼마동안 쓸만한 「스캔들」에 굶주려온 영국사람들의 구미를 자극해 지난 며칠째 이 두 남녀의 이전투구는 어디가나 큰 화제다.
이런 흙탕물이 튀겨지는 통에 누구보다 「윌슨」전수상의 꼴이 사납게 된 건 물론이지만 그 못지 않게 입장이 거북해진 것은 모처럼 귀족감투를 쓰게 됐던 점잖은 인사들이고, 또 노동당사회주의자들로부터 백안시 당해 온 상원소속의 대소귀족들이다.
우리말로야 간편하게 「상원」이라고 번역되고 있지만 영국서 「귀족원(House of Lords)」으로 불리는 이 영국특유의 의정기구는 세습적으로 이어받은 생전의 논공행상으로 당대의 수상(수상의 천거에 의해 여왕이 수여)으로부터 받은 말하자면 「대감」이라는 칭호가 붙은 「귀하신 몸」들이 모인 귀족원이다.
그리고 이런 전근대적인 제도가 별 실권은 없지만 입법부의 일부로서 그 명색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이들 귀족들의 권위라는 게 아주 엉터리없는 것으로만은 여겨지지 않아 온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 귀족원 의원의 선정이 정말 여비서 하나와 천거의 덕분이라면 그 권위의 꼴이 말씀 아니게 될 것은 뻔한 노릇이다.
그야 이 「헤인즈」비서의 주장이 「윌리엄즈」여사 말마따나 『전혀 터무니없는 수작』인지도 모른다. 정말 이래도 그것은 일부에 관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귀족들의 앉은자리는 편하지 않다.
그건 보자하니 이 노동당 수뇌들이 상원을 헌신짝 보듯 한다는 눈치기 때문이다.
사실 얼마전 문제의 여비서를 두고 이곳 보수당계 신문들이 줄기찬 「헐뜯기 운동」을 벌이자 그 때의 수상 「윌슨」씨는 보기나 하라는 듯 그 여비서를 여자남작(바로니스) 칭호를 주어 하루아침에 귀족을 만들어버렸다. 그래 「윌리엄즈」여사는 「레이디·폴켄더」라는 칭호와 이름을 가진 상원의원이 되었다. 그와 자리를 같이 하게 된 딴 귀족들이 「윌슨」의 행동을 상원멸시에서 나온 것이라고 불평하게도 됐다.
이런저런 경위로 해서 좌파가 우세한 노동당의 올해 당 대회에서는 상원폐지라는 것을 정식 결의안으로 올리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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