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왜 달러로 결제하나 … 자국 통화 쓰면 비용 줄어드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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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국 인민은행장인 다이샹룽(戴相龍)은 “한·중·일 수출입 대금만이라도 미국 달러 아닌 원·위안·엔으로 결제해 보자”고 제안했다. 사진은 이달 22일 중국 양저우시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한·중·일 30인회에 참석한 다이샹룽. [양저우=오종택 기자]

“한·중·일은 (역내 교역에서) 왜 자국 통화를 놔두고 다른 화폐(미국 달러)로 바꿔 결제해야 하나. 위안화·원화·엔화로 직접 결제할 수 있게 하자.”

 지난 22일 중국 양저우(楊州)에서 열린 한·중·일 30인회 경제 분야에서 가장 관심을 끈 발언이다. 역내 교역에서 사실상 달러화를 배제하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제안의 주인공은 1995~2002년 중국의 인민은행장을 지낸 다이샹룽(戴相龍)이다. 기자는 “개인 의견이냐, 중국 당국의 정리된 의견이냐”고 물었다. 그는 “중국의 금융정책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은 공감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실제 30인회 중국 측 좌장인 쩡페이옌(曾培炎) 전 부총리도 기조연설에서 “3국 통화의 직접 교환 시스템을 만들자”고 말했다. 다이 전 행장의 제안이 중국 당국과 사전에 조율된 발언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이 전 행장은 “중국의 전체 수출입에서 위안화 결제 비율은 13% 수준”이라며 “하지만 일본과의 교역에서 위안화 결제는 3%밖에 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중·일 자체 화폐로 결제하는 비중을 높여 나가면 달러에 의존하는 바람에 치러야 하는 환전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장기적으로 약세에서 못 벗어날 달러화로 수출대금을 치르는 건 리스크를 떠안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다이 전 행장은 한·중·일의 천문학적인 외환보유액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는 “세 나라가 너무나 많은 외환보유액을 안고 있는 것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선 큰 부담”이라며 “외환보유액 규모를 계속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세 나라는 세계 외환보유액 가운데 46%를 쥐고 있다. 그는 “각자 불필요하게 큰 물독을 집에 갖고 있는 셈”이라며 “자원낭비”라고 말했다.

 다이 전 행장은 중국이 아시아 지역의 개발금융도 주도하려는 전략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건설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은행을 설립하기 위해 중국 정부 내에 태스크포스팀이 꾸려져 있다”며 “이는 지난해 11월 중국 공산당 3중전회에서의 결정사항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과 미국이 주도하면서 일본이 총재 자리를 독점하는 현재의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투자은행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ADB에서 중국의 지분율은 6.4% 정도다. 미국이나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다이 전 행장은 “몽골·북한 등에서 도로와 항만 등을 건설할 일이 많다”며 “인프라 건설 은행을 설립한다면 중국이 500억 달러 정도는 거뜬히 출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다이 전 행장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서둘러 타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근 역사 문제 등으로 삐걱거리는 한·일 관계와 중·일 관계를 의식한 듯 “정치와 분리해서 (진도가) 나가기 어렵지만 무역 문제를 잘 해결하면 정부 간 과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저우=예영준 특파원
사진=오종택 기자

◆다이샹룽=중국의 고도성장기인 1995~2002년까지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장을 지냈다. 재임 기간 동안 아시아 외환위기(1997년)를 겪으며 한국의 금융 당국자들과 교분을 쌓기도 했다. 인민은행장 퇴임 이후 2007년까지 중국의 4대 직할시 가운데 하나인 톈진 시장을 거쳐 최근까지 사회보장기금이사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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