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프로] '이것이 인생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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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처럼 다정한/사람들이라면/장미꽃 넝쿨 우거진/그런 집을 지어요…."

1970년대 맑은 목소리로 '비둘기집'이란 노래를 불러 인기를 모았던 가수 이석(본명 이해석.아명 이영길.62.사진)씨를 기억하시는지. 고종 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아들이었다는 사실로 당시 커다란 화제가 됐다. 그 뒤 30여년. 이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억속에서 잊혀진 조선 왕조 왕자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1일 저녁 7시30분 KBS 1TV '이것이 인생이다'의 '마지막 황손'편은 이석씨의 노년을 추적했다. 그는 현재 방 한칸 없이 유일한 재산인 지프에 세간을 모두 싣고 찜질방을 전전하고 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는 41년 관훈동 사동궁(현 종로 예식장 자리)에서 의친왕의 11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6.25로 황궁 재산의 대부분을 잃고, 그나마 남아있던 재산이 이승만 정권에 의해 국고로 환수당한 뒤 가족들은 심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특히 59년 아버지 의친왕이 사망하자 그는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종로 2가 음악다방에서 DJ일을 시작했다. 62년부터는 미8군에서 한달에 3만원을 받으며 노래도 불렀다.

노발대발한 문중 어른들에게 그는 눈물로 호소했다. "황족의 위신도 중요하지만 먹고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의 가수인생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64년 큰어머니(순정효황후)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한 업주가 무대에 설 것을 강요한 것이다. 울분을 느낀 그는 가수 생활을 그만두고 월남전에 참전했다.

부상하고 귀국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 경제 능력이 없는 황실 사람들이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그는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건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아늑한 가정도 꿈꾸었지만 그가 만난 세 명의 부인은 모두 그의 곁을 떠나갔다.

하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각오로 재기 음반을 준비 중이다. '황실보존국민연합회' 총재로 있으면서 황실 문화 복원 작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연출을 맡은 김달해 PD는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유일한 왕자인 이씨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개인의 인생역정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정형모 기자

<바로잡습니다>

4월 1일자 S4면 '주목! 이 프로' 기사에서 의친왕은 1959년이 아닌 1955년에 사망했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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