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씨와 주한 미군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미·카터」씨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후로는 처음으로 주한 미군의 장래 문제에 관해 다시 한번·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앞으로 한국에 와 있는 미 지상군을 감축하는 문제는 『한 일과의 긴밀한 협의 하에 대단히 완만하게, 대단히 용의주도하고, 대단히 조심스럽게 다루겠다』는 것이었다.
「카터」씨의 공약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정리해 본다면, 그는 분명히 주한 미 지상군의 단계적 감축을 하나의 장기 전망으로 고려하고 있으나, 이 경우에도 한일의 안보와 미국의 전략적 이익만은 철저히 수호하겠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카터」씨가 선거 공약으로 밝힌 「주한 미군 철수」라는 일반론의 시행에 있어 그 시기와 규모 등에 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으며, 설사 철수를 하는 경우에도 공군은 잔류될 것임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이라 하겠다.
주한 미군에 관한 이 같은 그의 소신에는 감축 계획이라는 변수와 안보 수호라는 상수가 동시에 잠복해 있으며, 그 두 가지를 다같이 충족시키려는 고심과 심려의 흔적이 역력히 엿보인다.
군사적으로 볼 때, 미국의 「아시아」전략은 이미 미·중공의 상해 「커뮤니케」와 「닉슨·독트린」을 깃점으로 대국적인 궤도 수정을 시작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핵 우산과 해·공군력을 제공하고, 지상전에는 해당국의 자주 방위를 원칙으로 하며, 거기에는 일본의 보다 많은 기여가 필요하다고 하는 정책방향이다.
다만 거기 한가지 예외가 다름 아닌 한반도의 경우였다. 이 지역에는 4대국의 이해가 미묘하게 얽혀 있는데다가, 미국 자체의 세계 전략상 차지하는 한국의 전술적·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닉슨·독트린」의 예외 지역으로 규정되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은 지금에 와서도 기본적으로는 변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제 「카터」행정부가 들어서서 만약 그와 같은 기존 방침을 서서히 실현에 옮기려 한다면 거기엔 두 가지 문젯점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는 주한 미 지상군의 감축과 미국의 국방비 감축의 상관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이다. 지상군 감축을 상쇄하기 위해 「카터」씨는 공군력과 방공 해제의 강화를 생각하는 모양인데 금액으로 환산한 기지 유지 경비는 「필리핀」의 경우를 두고 보더라도 엄청난 액수다. 그렇다면 굳이 채산에도 맞지 않는 지상군 감축론을 들먹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차라리 그 보다는 동북아 현상유지의 주요한 인자로 존속해 온 주한 미 지상군을 그대로 놓아두는 편이 어느 모로 보나 더 유익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이 지역에는 사직도 아무런 항구적인 평화 구조가 정착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한국의 자주 국방이 완결되지 않는 이 싯점에서, 그리고 항구적 인간화의 신 구조가 정착하지도 않은 이 때에, 급할 것도 없는 미 지상군의 각축론을 구태여 내세울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로 생활해야 할 문제는 우리 한국인 자신의 마음가짐이다.
미국의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어 어떤 정책을 천명하느냐 하는데 대해 우리가 결코 무관심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정도가 지나쳐 외부 정세의 변화에 필요 이상으로 과민한 나머지, 행여 자신의 주체적인 자세에 흔들림이 있어서는 더욱 안될 일이다.
우리도 이제는 자신의 머리와 눈으로 주변 정세의 기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냉정하게 허가할 줄 아는 성숙성을 견지해야만 하겠다.
우방의 공약에 변함이 없다고 해서 정세의 유동성을 등한시해서도 안되겠지만, 또 그와 반대로 어떤 변조가 예견된다고 무조건 우왕좌왕하는 것도 현명한 태도는 아니다.
요컨대 우리는 주변 정세를 투시하면서도 일희일비함이 없이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자주국방의 길을 착실히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