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대 유물의 보관과 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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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안 앞 바다에서 침몰된 원대의 무역선에 실렸던 듯한 도자기 등 당시의 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보도는 전문가는 물론 많은 국민에게 큰 충격과 흥미를 자아내게 하였으며 그 뒤 계속된 인양 작업으로 수천 점을 건져내게 되니 이와 같은 뜻밖의 수확에 따른 여러 가지 화제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당국에서는 인양 작업을 11월말로 금년에는 일단락을 짓고 작업은 명춘에 다시 계속하기로 하였다니 우리는 이 중간 결산을 놓고 과정에 있었던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한번 생각하고 넘어갈 때가 왔다고 하겠다.
최초로 송·원대의 도자기가 인양되자 바로 국보로 지정하리라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의 도자가 귀한 우리 나라에서 그 전성기의 유물이 완전한 형상을 갖춘 채 이처럼 많이 나오게 되었으니 이에 따른 흥분이 없을 수 없었던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하겠으나 이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검토나 연구도 거치지 않고 덮어놓고 떠들썩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겠다.
국보의 「국」은 각기 제 나라를 표시하는 것이겠지마는, 외국에서 만들어진 미술품이라도 이를 국보로 지정한 예는 없지 않았으므로 이에 편협한 주체 의식이 작용될 수는 없다. 그러나 송·원대의 도자기는 중국은 물론, 널리 「유럽」·중동에도 많이 남아 있으므로 이와 비교하여 뛰어난 미술품이라는 확실한 결론을 얻은 뒤에 정하여도 늦지 않다고 하겠다.
우리에게 당대 중국의 유물이 전무하다시피 한 까닭은 고려 왕조의 재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훌륭한 책자의 생산국이던 고려로서는 실지로 이를 수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의 도자기에 관하여 이렇다할 지식이 없이 지내게 되었지만, 문화나 예술이란 서로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계승 발전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 도자기의 특징을 보다 명확히 알기 위하여도 이 기회에 중국의 도자기에도 아울러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또 이 유물을 어디에 보관하느냐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모양인데 한마디로 목포·광주·서울, 그밖의 어디에 두어도 좋다. 무령왕릉의 유물이 공주에, 천마총의 유물이 경주에 보관 전시되듯이 목포나 광주도 좋지만 당장 예산이 없으면 다른 곳도 무관하다. 그리고 어디에 두든 그 일부는 몇몇 박물관에 나누어 모든 국민이 송·원의 도자기가 어떤 것인가를 쉽게 보고 알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했으면 싶다.
이 보다도 더욱 중요한 일은 모처럼 얻게된 귀중한 문화재를 어떻게 잘 보관하느냐에 있다. 우리가 오랜 문화를 가졌다고는 하지만 대개의 문화재는 병화를 입거나, 소홀한 관리로 산일·파손되거나, 심지어 해외로 흘러나가 그 수는 많은 편이 못된다. 또 지금 지정된 국보·보물의 태반이 전세품이 아닌 출토품이라는 사실도 주목하여 아껴서 전하는 풍토를 가꾸어야겠다.
끝으로 문화재에 대하여는 보호법이니 판매 법이니 하는 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법에 앞서 모든 국민에게 문화재를 애호하겠다는 생각이 깃들도록 계몽을 서둘러야겠다. 이번에 처음으로 발견한 어부 등은 인양에 큰 공로가 있지만 범법자의 몸으로 현장에 나왔다고 하니 일말의 동정과 아울러 그 무지를 나무라고 싶다. 따라서 앞으로는 문화 국민으로서 이런 희비가 엇갈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가 유념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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