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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산재보험 강제 가입하라니, 누굴 위한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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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김정동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보험설계사·학습지교사·골프장캐디·택배기사 등 39개 직종 40여만 명(노동계 추산 250여만 명)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해 산재보험 가입을 강제화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아 원칙적으로 산재보험 대상이 아니지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특례 덕택에 원하면 가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입률은 9%에 불과하다. 그래서 국회는 그들의 권익이 침해되고 있다고 보고 산재보험 가입을 강제화하려는 것이다. 대표적 업종인 보험설계사에 대해 논의해 보자.

 결론적으로 산재보험 가입 강제화는 오히려 보험설계사들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첫째, 산재사고란 작업 중에 입는 부상이나 질병인데 말과 서류로 업무를 수행하는 보험설계사가 산재사고를 당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보험설계사에게 적합한 보험은 보장범위를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민영보험이다. 실제 약 85%의 보험설계사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민영 상해보험을 선택해 가입하고 있다. 자신에게 해당되는 보상 항목이 별로 없는 산재보험을 보험설계사들에게 가입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횡포가 아닐까 싶다.

 둘째, 보험설계사들을 모두 일률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시키면 오히려 그들의 일자리를 잃게 만들 것이다. 조세귀착이론에 따르면 산재보험료는 명목적으로 보험사가 내든 설계사가 내든 관계없이 궁극적으로 보험사에 부담이 된다. 산재보험 가입을 강제화하면 보험사들의 비용이 증가하고 수익성이 낮아져 설계사 채널 축소 및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진다. 전업 설계사가 아니라 부업으로 보험설계사 일을 하는 서민층 주부 수만 명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이는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사회보장비 지출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셋째, 보험설계사의 산재보험 가입률이 저조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보험사가 가입시켜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보험사가 ‘갑’ 혹은 독점적 위치에 있고 보험설계사들이 ‘을’ 혹은 착취당하는 위치에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험사들이 설계사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설계사들이 원치 않기 때문에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 없이 지레짐작으로 산재보험 가입을 강제화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크다.

 선례도 있다. 2011년 아파트 경비원 최저임금을 법정 최저임금의 80%에서 100%로 인상하려 했었다. 그 결과 부녀회에서 경비원을 해고하고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정책이 강행됐다면 아파트 경비원 7만~8만 명이 해고되었을 것이라는 게 당시 전문가들의 예측이었다. 정부는 어설픈 자비심으로 주먹구구식 경제정책을 수립할 것이 아니라 합당한 이론과 실증분석에 근거한 과학적 정책을 펴야 한다. 국민도 수준이 높아져 감성적으로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국민 행복을 해치는 정책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김정동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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