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또 하나의 규제, 적합업종 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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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달 제조업 및 서비스업 분야 34개 업종을 신규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추가 지정할 뜻을 내비쳤다. 기존의 82개 품목이 재(再)지정된다고 가정하면 올 가을부터 최소한 110개가 넘는 중기 적합업종 품목이 시장을 규제하게 된다. 시장이 아닌 ‘인위적 기구’가 개별 기업 상품의 잔존 여부를 판정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되는 것이다.

 동반위가 적합업종제를 계속 밀어붙이는 논리는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이 제도가 ‘대·중소기업 간 합리적인 역할분담을 이끄는 제도’라는 것, 다른 하나는 ‘헌법과 상생법에 근거해 민간이 합의한 동반성장 방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가 충분하지 않다.

 우선 이 제도가 소비자의 이익에 부합되는가? 경쟁자가 사라진 무주공산에서 중소 사업자들은 혜택을 누렸을지 모르지만, 이런 제도적 보호에 따른 수익증대는 ‘누군가의 손해’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둘째로 경쟁 촉진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제고시켰는가? 적합업종제는 어떤 명분을 붙인다 해도 특정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였을 뿐 산업 경쟁력의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편적인 무역규범과의 충돌 가능성은 없는가? 미 무역대표부는 정부 ‘입김’이 작용하는 동반위가 미국 기업의 한국 서비스 시장 접근을 제한한 것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적합업종제는 로드맵에 따라 거둬내야 할 규제로 보는 것이 맞다. 따라서 신규로 적합업종 지정을 추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존에 지정된 적합업종도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재지정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적합업종제는 반(反)시장성과 불충분한 실효성으로 노무현 정부에서마저 폐지한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를 부활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한국 경제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 ‘규제개혁’에 국가적 역량을 모으고 있다. 적합업종 추가지정 및 재지정은 이 같은 방향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서는 안 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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