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대남공작 직접지휘, "죽음각오하고 일하라"|열성당원이지만 서울출신이라 숙청위협 계속 느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수사당국에 따르면 김용규씨는 서울중학교 2학년 재학 중 6·25가 터지자 북괴군에 강제동원 되어 북으로 끌려가 52년9월까지 연천·금화 등지의 전방지역에서 화천 돌파 안내공작원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대남 간첩 양성소인 금강정치학원에 입소, 간첩교육을 받은 후 노동당 중앙당 연락부에 소환되어 대남 공작임무에 종사, 9년 동안 활동해 왔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 동안 대남 공작에 열성을 보임으로써 68년8월에는 이른바 영웅칭호와 2급 국기훈장을 받았고, 75년4월에는 1급 국기 훈장을, 그리고 75년10월에는 금별「메달」을 받았으며 북괴괴수 김일성이 친필로 쓴 노동당원증읕 받는 등 열성적인 대남공작원이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16세때 입북, 열성적으로 일해 왔으나 남한출신이라는 이유로 김일성대학에서 퇴학당하고 사상검토대상으로 심사를 받는 등 소외감과 불안감을 느껴 온 데다가 75년3월 공작원으로 소환된 후 동료공작원이 사소한 잘못으로 탄광광부로 숙청되자 자신도 언젠가는 그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 예상되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75년9월 김정일이 전 대남공작원을 노동당 3호 청사에 모아 놓고 앞으로 대남공작사업을 자신이 직접 지휘하겠으며 모든 공작원은 죽을 때까지 철저히 사업을 수행해야 된다는 지시를 받게 되자 자신의 앞날에 강한 회의와 절망을 느끼게 되었고 나아가 북괴사회에 대해 더욱 환멸을 느껴 월남 귀순할 것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9월 중앙당으로부터 전남거문도에 침투하여 현지에서 간첩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영희를 대동, 월북할 것과 8·18사태이후의 남한 정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오라는 임무를 받고 간첩 2명과 함께 공작선을 타고 남하, 9월19일 밤10시30분 거문도에 침투하자 동료2명에게 함께 자수할 것을 간곡히 권유했으나 이들이 거절, 항거하기에 사살한 뒤 이튿날인 20일 새벽3시쯤 부근 삼산지서에 자수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정보부는 김씨의 자수로 북괴의 대남공작기구 중의 하나인 노동당중앙당 연락부 등이 개편 확장되었으며 특히 김정일이 대남공작의 총책임을 맡아 공작원에 대한 훈련을 강화하면서 14세부터 16세까지의 소년소녀를 대남공작원으로 양성하고 새로운 공작수법을 개발하는 등 공작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이 폭로됐다고 밝혔다.
중앙정보부는 또 북괴가 남파공작원을 수송하는 간첩선은 시속30「노트」 이상의 고속에 각종 총포로 중무장된 50t급 함정으로 겉으로는 흔히 볼 수 있는 저인망 어선으로 꾸미고 있으며 특히 항해시 일본기를 게양하고 선체외부에 일본선명을 기재한 표지판을 붙여 가장하는 등 국제사회의 규범과 도덕을 무시하고 해적행위와 다름없는 국제법 위반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