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아픔딛고 달려온「망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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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혈육과 고국을 그리는 망향 40년의 절규를 어찌 조총련의 폭력이 막을수 있겠습니까? 내 딸 영희는 비록 저들의 검은 손에 끌려갔었지만 우리 5식구는 이렇게 조국땅에 들아왔습니다.』-추석성묘단으르「하네다」공항을 출발 직전 장녀 영희양(14·일본명서산영자·기왕현조선초중급학교중급반2년)을 조총련에 납치당한 강기병씨(54·동경도신숙서신숙7정목2의10)는 3일 하오 김포에 도착, 딸을 빼앗겼던 분노와 남겨 두고온 아픔에 뒤엉켜 이렇게 외쳤다.
부인「니시야마·유키꼬」씨(서산신기자·46)와 2남 희일군(15) 3남 희후군(15) 2녀 정희양(11) 등을 데리고온 강씨는『조총련들이 모략과 폭력을 휘둘러 내 딸을 유괴한 것은 모국방문을 한 사람이라도 줄이려는 발악이지만 비록 내 딸은 붙잡혔었어도 우리 5명이 고국을방문했다는 것은 조총련의 음모를 분쇄하고 그들과 투쟁할 것을 보여주는 결의』라며『앞으로 저들의 야만적 행동을 온 세계에 폭로하고 조국의 발전상을 전해 아직도 오기를 머뭇거리는 교포들을 설득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씨는 40년 가까이 연로한 어머님을 모시지 못했고 아버님의 운명도 보지 못한 불효를 씻고 생전의 어머니 얼굴을 보고싶어 달려 왔다면서 옥구에 살고 계신 할머니를 만나면 큰절을 올리겠다고 연ㄴ습까지 했던 영희양이 마음에 걸려 가슴이 멘다고 울먹였다.
강씨는 영희양이 납치되기 전, 공항으로 나올 때 「택시」2대를 대절, 자신과 아들들은 앞차를 타고 영희양은 어머니「유끼꼬」씨와 뒤차로 따라 왔는데 공항「로비」에 도착한 뒤따라 오지 않아 다시 나와 보니 영희양 학교의 학생 6∼7명과 선생 7∼8명, 조총련계 20여명이 둘러싸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부인「유끼꼬」씨는 피랍 직전 영희양이 친구들을 얼싸안고『너희들도 우리나라에 가니』하며 순진하게 깡총깡총 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공항에는 조카(맏형권병씨아들)인 희철씨(43·문공부해외공보관실근무)가 나와 강씨 가족을 맞이했다.
한편 강씨의 숙소인 세종「호텔」에는 가족들을 대표해서 3일 밤 전북 옥포에서 상경한 세째형 선병씨(63)가 동생을 만나 오랜만에 형제의 정을 나누었다.
형 선병씨를 보는 순간 강씨는『형님』하며 품에 안겼고 선병씨는『영희가 납치되었다해서 어머님과 가족들이 크게 걱정했다』면서 동생의 등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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