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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유혈폭동으로 배전 받는 남아 흑인분리주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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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6월 소웨토의 흑인폭동이래 만3개월 동안 남아프리카 백인정권은 아파르트하이트(인종격리) 정책에 도전하는 흑인원주민의 계속되는 항거 속에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사태를 맞고있다. 흑인 민족주의자들과의 전쟁상태로 말려들고 있는 이웃 백인국가 로디지아의 문제 등 남부 아프리카 두 백인국가의 존립을 걸고 포르스터 남아 수상은 4일 키신저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갖게 된다. 과연 남아프리카는 아파르트하이트 정책을 포기할 것인가? 그 실상을 파헤쳐 본다.
요하네스버그 새벽2시. 영국인 애쉬포드의 집에 4명의 경찰관이 들이닥쳤다, 경찰관들은 현관을 노크하지도, 수색영장을 제시하지도 않고 곧장 뒤뜰의 흑인하인이 살고있는 헛간 같은 곳으로 향했다. 잠자던 흑인하인이 불려나와 이름을 확인 받고 그의 헛간은 철저한 수색을 당했다.
종이조각과 남비들이 어지럽게 흩어진 헛간을 버려둔 채 경찰관들은 다음 집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남아프리카의 불법체류흑인 수색대들이다. 좀 뜸해지긴 했어도 한달에 몇번씩 흑인 수색대가 이런 식으로 거쳐간다. 소웨토 알렉산드라와 같은 흑인마을에서는 한밤의 수색은 더욱 빈번하다. 특정지역에 특정기간에 체류할 허가를 갖지 못한 흑인원주민은 밤중에 끌려나와 그들이 한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백인정부가 지정해준 「고향」으로 추방된다. 추방되는 자는 그의 아내와 불법적으로 밤을 같이 보낸 흑인남편일수도 있다. 또 그는 어머니와 불법적으로 함께 있는 흑인자녀일수도 있다.
이들은 모두 부도덕금지법·국민등록법·치안유지법·인종교류금지법 등 남아프리카 백인정권의 수많은 아파르트하이트 법률 중 가장 악명 높은 한 법률인 통행법 위반자들인 것이다. 모든 흑인원주민은 백인지역에서 태어나 계속 그곳에서 거주해왔거나, 한 백인 고용주 밑에서 10년간 계속 일해오지 않았으면 그 지역에 72시간이상 거주할 수가 없다.
그가 만약 백인지역에서 태어나 15년간을 살았더라도 허가 없이 2주 동안 딴 곳에 갔다오면 백인지역에 거주할 권리를 잃는다. 한 흑인이 백인지역에서 태어나 14년간 거주했고 한 고용주 밑에서 9년간 일해왔어도 그의 아내와 자식은 그와 72시간이상을 함께 있을 수 없다.
총인구의 70%를 차지하는 흑인원주민 반투족을 반투스탄이라고 불리는 황량한 벽지로 내몰려는 반투자치법이 착착 실행됨에 따라 통행법은 강화되고 위반자는 늘어났다. 50년대에 연평균 통행법 위반자가 31만9천명이던 것이 60년대에는 연44만9천명으로 늘어났고 70년대에 들어서는 매년 55만6천명이 통행법에 저촉되어 처벌되거나 추방되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을 떼어놓는 이 야만적인 법률은 남아프리카 백인우월주의의 한 표현에 불과하다.
1953년 미국인 목사 존·피어스마가 아파르트하이트 정책에 대해보낸 질의서에 당시의 말란 수상은 이렇게 답했다.
『남아프리카 백인의 마음속에 뿌리 박힌 유색인에 대한 의식은 흑인과 백인이라는 두 그룹의 기본적인 차이에 기인한다. 피부빛깔의 차이는 융화할 수 없는 2개의 생활양식, 야만과 문명, 이교와 기독교사이의 차이를 물리적으로 나타내는 것일 따름이다.』
그들의 정책에 대해 세계의 비난이 쏟아져도 그들은 오히려 비난하는 사람들을 탓했다.
백인들의 이같은 인종정책에 대해 흑인원주민들의 항거는 비폭력적이었다.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범 아프리카회의(PAC) 등 흑인단체가 결성됐지만 그 지도자들은 갖가지 인종법과 공산당금지법에 얽혀 감금되거나 연금상태에 놓였다.
61년 통행법이 부녀자들에까지 확대 실시되어 유명한 샤프빌 학살사건이 일어났을 때 PAC지도자 소부퀘는 그의 통행증을 스스로 경찰서에 반납, 소극적인 항의를 했다. 그는 곧 불법선동혐의로 체포됐고 3년 형기가 끝나자마자 공산주의금지법 위반혐의로 다시 로벤섬의 형무소에 끌려갔다.
그러나 폐쇄적이고 탄압적인 아파르트하이트 정책은 그 자체가 폭력성을 감추고 있었고 결국 「억제의 폭력」은 「항거의 폭력」을 유발시키고 말았다. 지난 6월 소웨토에서 일어난 흑인폭동에서 1백76명이 사망하고 1천명이 넘는 부상자가 생겼으며 지난 4일부터 알렉산드라 소웨토 케이프타운으로 번지고 있는 반정부폭동도 27명이 죽고 수백명이 부상하는 유혈사태로 확대되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이단적인 백인작가 앨런·패턴은 『통곡하라, 사랑하는 조국』이란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흑인을 위해 헌신하던 백인이 흑인들에게 살해되는 역설적인 장면을 그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난6월 소웨토의 폭동에서 흑인들에게 얻어맞아 죽은 첫번째 백인은 흑인들을 위해 일해온 의사 멜빌·에델스타인이었다. 오랜 차별주의의 수모 속에서 폭발한 폭력은 이제 맹목적이고 일반적인 대백인항쟁으로 번지고있는 것이다.
이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만일 남아프리카의 백인정권이 『아무리 치장을 해도 악덕이고 잔인한 아파르트하이트』(앨런·패턴)를 완화하고 흑인들의 이익에 눈 돌리지 않는다면 그 뒤는 더욱 비참한 사태가 일어나리라고 쉽게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백인처럼 생활하는 것만이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불식하라』는 흑인의식 운동이 젊은 흑인 층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흑인들의 신문 월드지는 그러한 원주민들의 저항의식을 단적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원주민들이 백인들의 채찍에 순종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음을 백인정부는 분명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일이다.』 <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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