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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자연, 그 비밀] 한겨울 뱀 기어나온 후 지진, 동물 예지력일까 … 우연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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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008년 5월 12일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규모 7.9의 강진이 발생하기 며칠 전에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도로를 뒤덮은 채 이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사람은 미지(未知)의 대상에 공포를 느낀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지진에 대한 두려움도 그중 하나다. 지난 1일 새벽 충남 태안 인근 해상에서 역대 넷째로 강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진도 일기예보하듯 미리 내다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1975년 2월 3일 중국 정부는 랴오닝성 하이청(海城)시 주민들에게 지진 대피령을 내렸다. 한겨울인데도 뱀이 땅 위로 기어 나와 얼어 죽는 등 이변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이튿날 규모 7.3의 대지진이 이 지역을 덮쳐 1300여 명이 숨졌다. 대피령이 없었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선 쓰나미로 15만 명 이상이 숨졌다. 반면 코끼리 같은 동물은 미리 산으로 도망쳐 피해를 면했다.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는 미세한 지구자기장 변화 등을 느꼈을 거란 추측이 많았다.

 일각에선 이런 사례를 근거로 ‘동물의 예지 능력을 지진 예보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과학적이란 비판이 많다. 지진이 발생하고 난 뒤 ‘돌이켜보니 동물들이 평소와 달리 행동했다’는 식이 많아서다. 하이청 지진 1년 뒤 탕산(唐山) 대지진(규모 7.8)이 발생했을 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해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과학자들은 지진파의 속도 차이를 이용한 경보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지진파의 종파(P파)는 초당 8㎞, 횡파(S파)는 초당 3㎞의 속도로 퍼진다. 먼저 도달하는 P파를 분석해 지진 규모를 예상하면 파괴력이 더 큰 S파가 도달하기 전에 경보를 내릴 수 있다. 일본은 이미 P파 도달 4~5초 내에 경보를 발령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한국 기상청도 2020년까지 10초 내 경보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도 한계가 있다. 지진 발생지에서 150㎞ 이상 떨어진 경우에만 효과가 있다. 그보다 가까우면 두 지진파의 도달 시간이 채 20초도 차이가 안 난다. 경보가 발령돼도 대피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1일 발생한 서해 지진의 경우 두 지진파 간격이 25초였다(서울 기준).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는 지난 1월 지진광(Earthquake light)을 지진 예보에 응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지진광은 지하 광물에서 분리된 전자가 지표 밖으로 나오며 대기 중의 전하와 반응해 빛을 내는 현상이다. 2008년 중국 쓰촨(四川) 대지진(규모 8.0), 2009년 이탈리아 라퀼라 지진(규모 6.3) 때 이런 빛이 목격됐다. 지하 암석 속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하며 분출되는 라돈(radon) 가스를 감지해 지진을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모두 기초연구 수준일 뿐, 당장 실제 경보에 활용하긴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때론 학자들이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2012년 이탈리아 라퀼라 법원은 2009년 지진을 제대로 예보하지 못한 학자 6명과 공무원 1명에게 최고 금고 6년, 벌금 900만 유로(약 129억원)의 형을 선고했다.

인류가 자연의 비밀을 다 밝혀내지 못한 상황에서 과학자들에게 지진 예보의 법적 책임까지 묻는 것은 과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다만 1초라도 빨리 지진을 감지해 피해를 줄이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노력 아닐까.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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