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재판부 "119신고 응급조치 … 살인의도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경북 칠곡에서 8세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계모 임모(왼쪽)씨가 11일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대구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법원은 이날 계모와 친부 김모씨에게 각각 징역 10년과 3년형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대구지검은 즉시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 JTBC]

살인이냐 상해치사냐. 지난해 10월 울산에서 계모 박모(40)씨가 여덟 살 의붓딸 C양을 때려 갈비뼈 14개를 부러뜨려서 숨지게 한 사건의 초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차이는 ‘의도’다. 살해 의도가 있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계속 때리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미필적 고의)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살인 혐의를 두고 사형을 구형했다. 베트남인 아내를 발로 밟아 갈비뼈 18개를 부러뜨려 사망케 한 피고인에 대해 2008년 1월 대전고법이 살인죄를 인정한 전례도 있다.

 하지만 울산 사건 1심 재판부는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울산지법 형사3부(부장 정계선)는 11일 판결문에서 “살해하려는 확정적 또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음이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몇 가지 근거를 들었다. 우선은 맞은 뒤 목욕탕에 들어간 딸이 욕조 안에 누워 꼼짝 않는 것을 보고 119에 신고한 점이었다. 박씨는 소방구조대의 전화 지시대로 가슴을 눌러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당황해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응급처치를 하고 119에 신고한 것을 볼 때 살인 의도가 있었다고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흉기를 쓸 수도 있으나 그러지 않았고,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머리를 때리지 않았다는 점 등을 살인죄를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아동학대의 심각성으로 볼 때 일반 상해치사보다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권고형량 상한인 13년보다 높은 15년을 선고했다. 1심을 맡은 정계선(45·여) 부장판사가 지난해 12월 살인죄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징역 10년을 내린 것보다 오히려 무거운 벌이다. 정 판사는 충주여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서울남부지법·헌법재판소를 거쳐 지난해 2월 울산지법에 부임했다.

 재판부는 이날 C양이 늦게 집에 왔다는 이유로 계모 박씨가 발로 차 다리 뼈를 부러뜨린 혐의, 남편과 다툰 뒤 뜨거운 물을 C양의 손과 다리에 뿌려 화상을 입힌 혐의 등을 모두 인정했다.

 살인죄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이견이 나오고 있다. 공판을 방청한 이명숙(51)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은 “피해자가 반항하기 어려운 아동이라는 점에서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사건을 맡았던 울산지검 김형준(44) 형사2부장 검사는 “항소심을 통해 살인죄를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울산=차상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