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고대의 환상 서린 드넓은 고원 이디오피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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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계엔 고원이 많지만 「이디오피아」의 「아비시니아」고원처럼 고대에의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 곳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시바」여왕의 입김이 서린 이 고원이 차창에서 보일 때 필자는 시대감각을 초월하여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서울 「아디스아바바」에 정작 도착하니 삽시간에 이런 상념은 없어지고 소름이 끼칠 만큼 긴장감이 휩쓸었다.
좌경한 뒤 얼마는 안되지만 사회기구가 18도로 바뀌어서 정치적인 「슬로건」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시내의 분위기가 불안을 느끼게 했다.
시민의 표정도 모두 긴장되어 있었으나 세계에서도 으뜸가는 쾌청한 도시로 유명한 「아디스아바바」의 짙푸른 하늘빛만이 예나 다름없었다.
이 서울은 10여 년 전에도 도심지에만 근대도시다운 「빌딩」이 서 있을 뿐 변두리는 오막살이집들이 많았는데 여전히 빈민들이 많이 보였다.
좌익진영에서는 주로 정치적으로만 돕고있는지 이렇다할 경제적인 비약을 느낄 수 없었다. 이 나라 사람은 흑인이면서도 여전히 「시바」여왕을 통하여 「솔로몬」왕의 피가 흐르는 백인계인 「셈」족의 자손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필자는 이 나라에서 볼 때엔 적대시되는 자유진영 국가의 한사람이어서 그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행동에 있어서 어떤 제약을 느끼게 되어 조사하게 되었다. 더구나 신분보장이 되지 않으니 자연히 경계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성을 떠나 좋은 벗들을 사귈 수는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이지적인 교양인으로 보이는 어떤 신사와 친하게 되었는데 세계 정세를 논의하는 가운데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지금까지 백인에게서 괴로움을 받아온 「아프리카」대륙이 해방되어 새로운 세기를 맞았건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각축장으로 되고있는 것은 「아프리카」 최대의 비극이다. 우리 「이디오피아」사람들도 사물을 냉철히 비판할 줄 모르고 있으니 한심스럽다』라는 내용이었다.
10여년 전에 왔을 때엔 「이디오피언·헤럴드」지에 한국의 벗이 왔다고 대서특필로 「인터뷰」기사를 실어 주었으며 또 벽지를 다닐 때엔 그 지방 군수가 고맙게도 여행의 안전을 위하여 호위병들을 보내어 나를 보호해 주기까지 했다.
그 옛정을 잊지 못하다가 이번에 다시 와 보았으나 우선 신문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하일레·셀라시에」 황제에 관한 소식이었다.
여기서 사귄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모른다고 하기에 행여나 하고 한 지식인에게 「하일레·셀라시에」 황제의 묘소를 알고 싶다고 하며, 이것은 정치적인 것을 떠나서 오직 인간적으로 알아보려는 뜻이라고 했다.
잘못했다가는 큰 혐의를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알아보고 싶다는 단서를 붙인 것이지만 이 신사는 알고도 입을 다무는지 딱 잡아떼며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셀라시에」 황제의 친위대장이 총살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셀라시에」 황제는 그 묘소를 알 길이 없으니 『무덤 없는 사자』란 말처럼 아무런 자취도 없이 사라진 것인가.
이 신사에게 「셀라시에」 황제의 정권이 뒤집힐 때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막대한 축재를 하여 외국은행에 숨겨두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물으니 『그런 말은 들었으나 확실한지는 모르며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천벌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하며 열을 띠었다. 알고도 모를 일은 정치의 진실이다. 앞으로는 더욱 오기 어려운 나라이고 보니 「하일레·셀라시에」 황제에 대한 사실을 알려고 애썼으나 행동의 제약 때문에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왔다.
『통치자가 되려면 종교가보다도 높은 차원의 행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신사의 말은 의미심장한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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