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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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금부터 38년 전인 1938년10월30일, 미국의 CBS「라디오」는 갑자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화성인의 내용을 알렸다.
이어 이 방송은 화성인과 지구 군과의 처절한 전쟁을 『실황중계』하기 시작했다. 「뉴요크」의 마천루만큼이나 큰 「로키트」 3대에 분승한 화성인들은 열광 선과 검은「개스」탄으로 지구상의 도시를 차례로 파괴해 나갔다….
이 방송을 듣던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걷잡을 수 없는 「페닉」 현상을 일으켰다.
그러나 사실은 「H·G·웰즈」의 공상소설 『우주전쟁』을 번안한 「라디오·드라머」였다. 그만큼 화성인의 존재 설은 전혀 황당무계한 얘기만은 아니었다.
1877년에 「이탈리아」의 「조반니·스키아파렐리」는 망원경 관측을 통해 화성표면에 여러 검은 줄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탈리아」말로 「홈」의 뜻인 「카날리」라 명명했다.
이게 영어로 오역되어 「커낼」(운하)이 되어 버렸다. 실제로는 「스키아파렐리」도 그 「카날리」가 인공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이 「카날리」를 인공 운하라 주장한 것은 민영익의 통역을 한 적이 있는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로웰」이었다.
「로웰」이 상상했던 화성인은 발이 가늘었다. 지구보다 인력이 작기 대문이다. 또한 지능이 비상하게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머리가 크고 또 산소가 적기 때문에 폐가 크다고 생각했다.
그 후에도 화성인의 존재를 믿는 학자는 많았다. 1928년에 영국의 「로빈슨」박사는 화성인과의 전파 통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1959년에는 또 소련의 「시크로프스키」박사가 화성 주변의 두 위성은 화성인이 발사한 인공위성이라는 신설을 펴냈다.
그러나 지난 65년 「마리나」4호가 화성 표면을 촬영한 결과 화성인의 존재에 대한 기대는 사실상 사라졌다.
화성에서는 여름철 적도부근에서도 기온이 매우 낮아 낮에는 17도, 밤에는 영하 70도까지 내려간다. 극지방에서는 영하1백 수십 도나 내려간다. 뿐만 아니라 대기도 1백 분의 1 기압밖에 없고 그것도 대부분이 2 산화탄소로 차있다.
이런 조건하에서도 생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번 「바이킹」1호의 생물실험을 맡았던 「클라인」박사는 생물 존재의 가능성은 0·02 %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달과는 달리 화성에는 극히 소량이지만 물이 있다. 또한 미 항공우주국의 생물학자 「양」 박사가 화성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그 속에 지구상의 세균을 넣었더니 그 중의 상당수가 증식했다.
이 모든 신비와 의문을 파헤치려는 「바이킹」1호가 지난 11개월 동안 3억2천40km의 여행 끝에 19일 하오 8시53분에 화성에 역사적인 연착에 성공했다.
「웰즈」의 소설에서 화성인을 물리친 것은 지구인이 아니라 「박테리아」였다. 그렇지만 이번 「바이킹」1호의 연착으로 실제로는 지구인이 우주에서 제일 위대한 존재임을 확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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