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 있는 캐스터 찾아라 … '월드컵 썰전' 2라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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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61·SBS), 이영표(37·KBS), 송종국(37·MBC). 해설위원들만의 중계 전쟁이 아니다. 최대 1000억원의 광고가 붙은 브라질 월드컵 TV 중계 시장을 놓고 캐스터 경쟁도 뜨겁다. 월드컵 중계는 국제축구연맹(FIFA) 선정 주관방송사가 제공하는 영상을 쓴다. 시청자가 보는 화면이 똑같다. 해설위원과 캐스터 역량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지상파 3개사(SBS·KBS·MBC)는 시청률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해설위원만큼이나 캐스터에도 공을 들였다.

 KBS는 조우종(38) 아나운서를 월드컵 대표 캐스터로 확정 짓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KBS는 애초 이광용(39) 아나운서를 후보로 낙점하고, 지난 1월 멕시코와 평가전(0-4패) 중계를 맡겼다. 이영표의 해설 데뷔전이라 기대가 컸던 KBS는 시청률 10.4%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KBS는 지난 2월 소치 겨울올림픽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KBS는 프리랜서 김성주(42)가 캐스터로 나선 MBC와 맞대결에서 번번이 졌다. 김성주는 MBC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 가’에 출연해 인지도가 높다. 케이블채널 스포츠 캐스터 시절 1년간 1000경기를 중계했다고 말할 만큼 경험도 풍부하다.

 그러자 KBS는 지난달 월드컵 메인 캐스터로 자사 출신 프리랜서 전현무(35)를 후보에 올렸다. 예능에서 활약 중인 전현무를 데려와 ‘김성주 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KBS 노조가 퇴사자는 3년 이내 KBS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없다는 규정을 내세워 피켓 시위를 하며 반발했고, 전현무도 고사했다.

 KBS는 캐스터로 조우종을 최종 낙점했다. 조 아나운서는 주로 예능에서 활동했다. 종합대회 중계와 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은 해봤지만, 축구 중계 경험은 전무하다. KBS는 조우종과 이영표를 ‘우리 동네 예체능’에 투입해 예능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축구 중계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중계의 예체능화’다. MBC는 ‘아빠 어디 가’에 함께 출연한 김성주-송종국 해설위원에게 지난 3월 그리스와의 평가전 중계를 맡겼다. 두 사람은 중계 도중 ‘아빠 어디 가’에 출연한 자녀들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더불어 MBC는 ‘아빠 어디 가2’에 출연 중인 안정환(38)도 메인 해설 후보로 키우고 있다.

 SBS의 월드컵 대표 캐스터 배성재(35) 아나운서도 예능감이 만만찮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박주영(29·왓퍼드)이 상대 할리우드 액션으로 경고를 받자 “경기장에 벌(蜂)이 있나요”라고 말하는 등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SBS는 배 아나운서의 친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대표 예능 ‘정글의 법칙’ 브라질 편에 투입했다.

 과거 스포츠 중계는 예능이 넘볼 수 없는 성역과도 같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MBC ‘이경규가 간다’는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KBS가 소치 올림픽 때 이상화(25)의 스피드스케이팅 중계에 예능인 강호동을 투입하는 등 이미 경계선을 넘어섰다. 일부 축구팬은 “1970~80년대 ‘국민의 목소리’라 불린 원종관·서기원 캐스터 시절이 그립다. 정통 스포츠 중계가 아닌 지나친 예능화가 불편하다”고 지적한다.

 1939년부터 축구 TV 중계를 시작한 독일은 푸스발 코멘타토어(Fußballl Kom

mentator)가 홀로 마이크를 잡고 캐스터-해설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독일 공영방송 ZDF의 벨라 레티(58)는 시청자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말로 중계를 한다. 경기 분석은 하프타임 때 독일의 전설적인 골키퍼 올리버 칸(45) 등이 스튜디오에 패널로 나와서 한다.

 스포츠 중계의 예능화가 반갑다는 목소리도 있다. “시청자들이 스포츠를 바라보는 취향이 바뀌고 있다. 진지함보다는 친숙함과 편안함을 추구한다. 스포츠 중계도 시대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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