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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진보파 몬데일|「동북아 기반」으로 딴 부통령「티키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여생을 「홀리데이·인」(관광객들의 「호텔」)에서 보낼 수야 없다』면서 74년11월 대통령후보가 될 꿈을 포기한 「월터·몬데일」이 그로부터 20개월만에 「호텔」신세 깨나 지게될 부통령후보로 뽑혔다.
「카터」의 부름을 받은 「몬데일」은 『알고 보니 「홀리데이·인」들이 깨끗이 단장을 해서 투숙할 만 하답디다』고 익살을 부렸다. 「카터」는 「머스키」「글렌」「처치」「스티븐슨」「잭슨」, 그리고 「몬데일」등 6명의 상원의원을 놓고 「러닝·메이트」를 고르다가 「몬데일」쪽으로 기울면서도 「몬데일」이 후보출마를 도중에 포기한 것이 걸렸다. 뒷조사를 시켜 보니 선거운동이 지겨워서가 아니라 인기가 2%이상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인 판단으로 기권한 사실을 알았다. 「몬데일」은 「카터」의 북부전략에 합당하는 인물이라서 선정했다. 48세의 「몬데일」은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카터」의 손이 닿지 않은 동북부의 진보적인 유권자들과 흑인 표, 그리고 빈민층에 인기가 높다.
1964년 「존슨」의 「러닝·메이트」가 된「험프리」의 상원의원자리를 계승한 「몬데일」은 주로 빈민구제와 아동보호에 관한 입법활동으로 착실히 명성을 굳혔다. 「닉슨」이 거부권을 행사한 아동보호법안은 「몬데일」의 야심작이었다.
「몬데일」의 『정치적 대부』는 「험프리」. 그를 상원의원으로 만든 것도 「험프리」다. 「몬데일」은 1948년 대학재학중일 때 「험프리」의 상원출마선거운동을 도와서 당선에 큰공을 세운 이래「험프리」사람이 됐다. 「몬데일」은 상원의원으로 부통령으로 「험프리」가 걸은 길을 걷고 있다.
「몬데일」은 가난한 목사 집에 태어나 「미네소타」대와 동 법과대학원을 고학으로 졸업했다. 그는 식당·깡통공장·옥수수 밭에서 일을 하여 학비를 벌었다. 그의 재산은 지금도 20만「달러」를 넘지 않는다.
「카터」는 자신이 없어서 소극적인 인물을 「러닝·메이트」로 뽑았다는 비난을 예방할 겸해서 「몬데일」같은 적극적이고 전격적인 사람을 골랐다. 「카터」가 반「워싱턴」의 입장을 선전하면서도 대통령이 됐을 경우의 의회 대책을 생각해서 의회, 특히 상원에서 「러닝·메이트」를 찾았다.
「몬데일」은 조의 지지를 받고 있다. 「카터」는 지금 어쩌다가「조지·미니」AFL- CIO 총재의 비위를 건드려서 불안한 판이라 「몬데일」에게 거는 노조단속의 기대도 크다. 「몬데일」은 흑백통합을 위한 강제「버스」통학을 원칙적으로 찬성하여 남부의 유권자들과 일부 북부 교외주택지에 사는 백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지만 남부는 「카터」가 남부 출신이라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여론이다.
「몬데일」이 전국적으로는 아직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지만 「카터」는 오히려 그런 점을 장점으로 여긴다. 「미네소타」는 옥수수의 고장이다. 「카터」는 땅콩장수로 입신했다. 땅콩·옥수수의 「러닝·메이트」에 대해서 이 나라 신문들은 무난한 짝이라고 평한다. 【워싱턴=김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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