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고 정력적인 창작활동 42년|작고한 박형준씨의 문학과 인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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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4일 갑작스럽게 작고한 만우 박영준씨는 한국문학사에 찬란한 빛을 남길 만큼 야단스럽게 각광받지는 못했지만 40여 년에 걸친 그의 정력적이고도 정직한 문학활동은 우리 나라 문학인 모두에게 귀감이 될만한 것이었다.
평남 강서 출생으로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던 해인 34년 단편소설『모범경작생』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문단에 「데뷔」한 박씨는 뒤이어 「콩트」『새우젓』과 장편 『1년』이 계속「신동아」에 당선됨으로써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 때의 당선소감에서 『죽어도 한이 없다』고 써 문학에의 숙명적 의지를 보였던 박씨는 그후 농촌과 그 속에서 사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을 발표하여 「농촌소설작가」로 불리었으나 해방 후에는 시야를 돌려 근대적 사회구조의 도시에 사는 지식인 또는 생활풍속을 추구함으로써 폭넓은 문학세계를 보여 주었다.
약1년 전 당뇨 등 신병으로 고통을 당하게 될 때까지 모교인 연세대강단을 지키면서 해마다 10편 이상씩의 작품을 「의무적」으로 발표해온 박씨는 작품활동이 이처럼 활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문단적 시류에 편승하기를 거부했으며 그래서 문우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반면 그는 행동적인 의지를 몸소 구현하기도한 작가였는데 35년 고향에서 「독서회」사건으로 5개월간 구류됐다든가 6·25사변 때 북괴에 납치됐다가 개천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든가 동란 중 육군종군작가로 활약하여 금성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든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34년 박씨가 소설로 당선했을 때 역시 같은 조선일보신춘문예에 시『백오』가 당선, 박씨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김동리씨는 『박씨는 정직과 진실만이 전부인 작가였다」고 고인을 추모하고 『그와 같은 작가정신이 인도주의와 이상주의의 바탕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박씨의 대표작으로는 장편으로 『종각』『새벽의 찬가』『고속도로』등, 단편으로 『모범 경작생』『목화씨를 뿌릴 때』『고호』『슬픈 행복】등이 있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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