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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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을 사는 우리 주부들은 흔히 「부엌데기」라는 이름에 익숙해 있다.
그런 이름이 주부들 자신의 입을 통해서, 혹은 남편들의 입을 통해서 호칭될 때 거기엔 애정의 여운이 전혀 없지도 않으나 동시에 적지 않은 좌절과 멸시의 감정 또한 깃들어 있음을 가릴 수는 없다.
사실 오늘의 우리 주부들은 우리 사회의 급격한 서구화 과정이 초래한 가치관의 갈등은 물론이지만 이론과 행동의 격차 때문에 일종의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며, 자칫 그로 부터 주부의 본분을 일탈하는 사태가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이들은 학교에서 남녀동등을 배워 정신적으로 새로운 지표를 마련했지만, 실사회나 가정에 돌아왔을 때 전통적인 남존여비의 사회·가정 구조 앞에 좌절을 경험하기 때문에 만성적인 정신질환에 빠지게 된다.
본지 보도에 의하면 오늘날 우리 주부가운데 7할이 넘는 수가 이 같은 정신적 좌절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도시의 주부들은 거의 90%가 가족 가운데서 「고립된 존재」임을 느끼며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신경성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진정코 우리 사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태라고도 봐야하지 않겠는가. 가정의 기둥인 우리주부들의 대부분이 이 같은 고립감에 짓눌려 마침내 폐쇄적 상황에 스스로를 투신하게 된다면 가정의 파탄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의 존립기반에 중대한 위협을 줄 것은 뻔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주부 가운데 약간의 경제적 여유라도 생기면 바로 그들이 가정의 행복을 도외시하고 도박에 몰두하며 사치경쟁에 휘말릴 뿐 아니라 퇴폐풍조에 전념하는 나머지 자신과 가정을 파괴로 몰아넣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이 같은 「병든 주부」들을 치유하여 훌륭한 주부로 이끄는 일의 중요성은 저절로 분명하다.
주부들이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주도할 수 있도록 평소부터 이들을 교육하고 사회가 함께 이를 위해 힘이 되어 주어야하는 것이다.
분명히 가정에서의 주부의 역할은 「부엌데기」로만 끝날 수는 없게 되었다.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생길수록 주부는 가정생활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어린이들이 보다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생활태도를 갖도록 유도하는 교사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끊임없이 자체향상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지성사회별로, 또는 자기가 속하는 자원단체의 「그룹」별로 국가·사회와 이웃을 위한 사람과 봉사의 기쁨을 체험하는 것도 오늘을 사는 주부들의 새로운 보람이어야 할 것이다.
이점에서 오늘의 교육은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 교육이 여생으로 하여금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를 주장하는 권리는 강조하면서도 가정의 신성을 보전하고 가족의 행복을 결정하는데 있어 여성이 인격적 투신을 통해서 결정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를 가르치는데는 너무도 소홀한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여성들이 「주부」로서 자녀의 교육에 참여할 때 점수 따기에 신경을 쏟는 것만큼 자녀의 인격적 도덕적 성숙을 강조할 수 없으며 자신들의 평생을 통한 인간적 수련과 도야에 무관심하게 되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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