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능 없는 의약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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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보사부는 8일 국내에서 제조·판매되고 있는 의약품들의 효능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반면, 그 부작용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 (WHO)의 권유에 따라 신경 안정제·진통제·「비타민」제·소화기관용 약·항생제 등 5개 부문의 19개 성분 4백60품목에 대한 약효를 재 허가한 결과, 허가 당시 효용 효과로 표기했던 8백50가지 중 59%에 이르는 5백가지가 내성 등으로 사실상 아무 효험이 없어졌음이 밝혀졌으며, 그중 60가지는 부작용마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보사부의 이 같은 발표는 이미 최악의 상태에까지 이른 환경 오염·농약화·식품 공해 등에 의한 위협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큰 충격을 안겨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우기 이번 재평가 품목들은 엉터리 무허가 제약 업소나 군소 제약 회사의 제품이 아니라, 유수 회사의 버젓한 제품으로서 그 사용 빈도가 극히 높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우리 나라에 있어서는 환자의 50%이상이 의료 수가가 비싼 병원보다 값싸고 편리한 약국을 찾고 있을 뿐 아니라, 의·약 분업이 이뤄지지 않아 오·남용의 가능성마저 짙다는 실정을 감안할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별다른 효능이 없는 약들을 마치 특효약처럼 과신하고 복용하다가 엉뚱한 부작용의 해까지 입은 꼴이 되고 말았으니 그 실망을 어디다 호소해야 할 것인가.
이번의 약효 재평가를 계기로 국민 보건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는 약품 공해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겠음을 국민 누구나가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전반적으로 의약품의 효능과 안전성을 높이는 대책이 강구되어야 하겠으며, 약의 부작용을 제거할 수 있는 상설 검사 기관을 두어 모든 의약품의 역가에 대한 공신력 회복에 힘써야 할 것이다.
현재 보사부가 허가한 의약품 품목은 8천5백 품목이나 되며, 따라서 아직도 96·2%가 재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국은 이들 나머지 의약품 등을 81년까지, 연차적으로 재검사하여 그 역가의 재평가 작업을 벌일 예정이라고 하나, 여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작업은 국민의 건강 유지와 사회의 안녕에 직결되는 것이니 만큼 만난을 무릅쓰고라도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약효 재평가 사업을 가장 먼저 벌인 미국의 경우, 식품약품국 (FDA)이 무효·유해 의약품의 배제를 철저히 해서 허가의 약품을 약 2천5백 품목으로 정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뇨병·혈압 강하 등의 추적 조사에 의한 그 공죄까지도 밝혀내고 있는 실정이다.
71년에 약효 재평가 사업을 시작한 일본은 5년 걸려 4만건의 약의 재평가를 끝낼 때까지 미·영에서 허가되고 있는 2천5백 종류만 사용케 한 전례도 있다. 우리 나라도 재평가 사업을 서둘러 실시하는 한편, 약품 공해를 줄이기 위해 나머지 7천5백45 품목 중에서 2천5백가지만 사용토록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한편 이번 검사로 약효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거나 부작용이 새로 밝혀진 의약품들의 제조는 시급히 금지하고 그 재고분을 폐기하는 조치도 아울러 강구되어야 한다. 이미 제조된 것이라하여 정실적인 처리를 용인할 수는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1962년 미국에서도 이미 허가된 의약품을 새로운 기준으로 재평가하고 유효성이 없어진 것을 허가 취소하는 일은 기득권의 침해라는 강력한 반발과 방해가 있었으나 「키포버」·「해리스」 두 의원의 눈부신 노력으로 실현을 본 교훈을 본받아야하겠다.
제약 업계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감을 절감하고 이에 능동적으로 적극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함께 의·약 분업 제도의 단계적 실시를 위한 준비와 신약의 검정을 철저히 하고 모든 약품에 약효와 함께 적용·부작용·배합 금기 등을 기재토록 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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