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마치」지가 팔렸다|불 프루보스트 「신문 왕국」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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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프랑스」의 신문 제국 「프루보스트·그룹」이 종말을 고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보수계 일간지 「르·피가로」는 이미 작년에 「에르상」이라는 정치인의 손에 넘어갔고 이번에 시사 주간지 「파리·마치」를 포함한 주간지 2개와 6개의 월간지를 국영 출판사인 「아셰트」사로 팔아 넘긴 것이다. 15년 전에 독자를 잃었고 두번째 결혼에서 얻은 다섯딸의 고독한 아버지인 사주 「자크·프루보스트」는 금년 91세로 좌파 지식인들의 세력이 가장 강한 이 나라에 자유 민주주의를 사제로 한 언론 제국을 건설, 지난 30년간 홀로 지배해 온 집념의 사나이다. 그가 이 제국을 정리한 동기는 「파리·마치」 등의 막대한 적자에 있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를 이어 나갈 아들이 없었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됐다는 전문이다.
지난 4월17일 「프루보스트」는 「샹젤리제」대로 뒤편의 「파리·마치」 사옥에 8개 주·월간 사장과 편집국장을 소집했다. 그는 신문 제국을 사겠다고 나선 「아셰트」 출판사와 자동차 「타이어」 회사인 「미슐렝」사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던 것. 그에게 있어서 이 모든 언론 기관이 그 자신의 소유였지만 『신문은 사회의 공기』라는 이념에 입각해서 사장과 편집국장들에게 팔 대상을 선택시켰던 것이다. 『만일 「미슐렝」사가 산다면 우리 신문들은 주유소의 「서비스」용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많다』는 등의 격렬한 논쟁이 사주 앞에서 진행된 후 즉각 투표를 실시, 만장일치로 「아셰트」사에 팔기로 낙착됐다.
75년전 한 지방지를 만들어 성공한 후 1924년에 「파리」로 진출한 그는 일간지「파리·미디」의 사장으로 2차전 전인 1940년까지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1930년부터 43년까지 「파리·솨르」를 경영, 언론 천재의 칭호를 받았던 그가 「나치」치하에서 신문을 발행했다는 이유로 「파리」 해방 후 부역자로 몰려 재판까지 받았었다.
47년7월 공소 기각 결정으로 「나치」 협력 혐의를 벗은 그가 1949년 처음 창간한 신문이 너무나 유명한 「파리·마치」였고 동시에 부역 신문이란 오명으로 고통받았던 「르·피가로」의 공동 사주가 되었던 것.
최근 경영이 점점 어려워져 「파리·마치」는 지난해 1천5백만「프랑」 (1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번 판매 때문에 이른바 「프루보스트」 제국이 완전히 붕괴되지는 않는다. 갓 대학을 나온 막내딸을 제외한 4명의 딸들이 아버지의 뜻을 잇기 위해 4개의 여성·가정 잡지를 「아셰트」로부터 다시 사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언론 제국의 부채는 2천6백만「프랑」 (약 28억원)이라고 발표되었다.
4명의 딸들이 다시 사는 4개 잡지 가격을 제하면 「프루보스트」의 손에 들어갈 돈은 얼마 안 될 것으로 추정된다. 대충 1억여「프랑」 (1백10억원)으로 평가되는 이 제국을 건설했던 그는 진실로 공 수거하는 것이며 그래도 『미련 없다』는 그의 소감이었다.
【파리=주섭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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