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는 대화의 장에 나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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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4 남북 공동 성명은 타율적인 조국 분단을 극복하려는 우리 민족의 주체적 의지를 표현한 역사적인 것이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7·4 성명은 5천만 민족에게 벅찬 기대와 희망을 안겨줬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찬양을 받았던 것이다.
7·4 성명을 통해 우리 민족은 자주·평화·민족의 대 단합을 조국 통일의 3대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기 위해 우선 남북 쌍방은 상대에 대한 중상 비방과 무장 도발을 하지 않고, 다각적 교류를 실시하기로 다짐했다. 그 5개월 뒤에는 남북 대화의 주무기구인 남북 조절 위원회도 발족되었다.
그러나 7·4 성명 4돌을 맞은 오늘의 남북간에는 이 성명이 명시한 자주·평화·민족의 대 단합이란 흔적마저 찾기 어렵다. 불행히도 오늘의 현실은 자주·평화 통일에의 희망보다는 좌절이, 긴장 완화 보다는 도리어 격화가, 그리고 민족의 대 화합은커녕 분열과 자학 행동의 밤낮 없는 자행이 되풀이되고 있다.
작년이래 한반도에는 6·25후 최대의 위기가 감돌고 있다. 명맥상 이어져 오던 남북간의 대화마저 중단된 채다.
7·4 공동 성명이 이토록 사문화 되다시피 한 것은 전적으로 북괴 측의 속셈과 행동이 7·4 공동 성명 정신과는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남북 대화를 민족적 대 단합에 기초한 평화로운 조국 통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적화 통일을 위한 방편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휴전선의 땅굴을 그 7·4 성명 직후에 파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저들의 속셈을 웅변하는 보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남북 대화를 그들의 적화 통일 3대 혁명 역량 강화 전략 중 국제 혁명 지원 역량 및 남한 내 혁명 역량 강화에 이용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들은 대화 과정을 통해 한국의 반공·안보 태세를 약화시키고, 우리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분열과 혼란을 조성하려는데만 힘을 썼다.
단계적 남북 교류 등 우리의 점진적이고 현실적인 대화 방식을 모두 묵살한 채 소위 「조건 환경론」을 내세워 반공법·보안법의 폐지, 공산당 및 간첩 활동의 합법화, 미군 철수 등 상투적인 선전 공세에만 열을 올렸다. 이렇게 그들의 주장은 모두 그들의 통일 기본 전략인 폭력 혁명을 통한 적화 통일의 여건을 조성한다는 대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어리석게도 그들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무릅쓰고서도 얻지 못한 것을 남북 대화라는 성스런 「테이블」에서 얻어내려 획책한 것이다.
그러한 저들의 속셈은 이뤄질 수 없었다. 이것이 결국 73년8월28일 북괴 김영주가 일방적 남북 대화 중단 성명을 내게 된 배경이다.
그후 북괴는 우리와의 대화는 팽개치고 엉뚱하게도 대미 평화 협정 체결 운운 등 대외 선전에만 광분하고 있다. 남북 대화 개시의 속셈이기도 했던 한미 상호 방위 태세의 교란을 다른 방법으로 획책해 보자는 저의에서다.
그러나 이는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이란 7·4 성명의 기본 정신을 다시 한번 난폭하게 짓밟는 실적을 하나 더 첨가하는 짓일 뿐이다.
국토 분단 30여년의 경험은 통일 문제를 위시한 남북한간의 그 어느 문제도 남북 당사자간에 직접 대화와 합의가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면 결국 언제고 우리 민족은 7·4 성명의 정신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다.
다만 그에 앞서 다짐해야 할 것은 조국의 통일을 50년·백년 뒤로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민족의 또 다른 유혈 충돌만은 어떻게 해서든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유일한 길은 북괴가 다시 대화의 장으로 돌아오는 것뿐이다.
이 시점에서 남북 대화의 재개 노력과 병행해 우리의 안보 태세 강화가 강조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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