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권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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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조가 어느 날 규장각 학사들과 환담을 나누다 8도의 인심을 평하는 사자단구를 꾸며냈다.
경기도는 경중미인. 팔방미인처럼 누구에게나 상냥하지만 속은 쌀쌀하다는 것이다.
충청도는 청풍 명월. 만사에 적극적이 되지 못하고 그저 세월 따라 바람 따라 흘러간다는 것이다. 가장 호되게 평한 것은 황해도로 들밭을 가는 소처럼 미련하달까 꾸준하다는 뜻으로 석전 경우라 했다.
언뜻 보아 게일 좋은 평을 받은 것은 강원도로, 암하고불이라 했다. 인심이 부처처럼 어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달리 뜯어보면 하는 일없이 앉아있는 부처처럼 허수아비나 다름없다는 뜻도 된다.
정조는 경상도도 가만히 놓아두지 않고 태산교악이라고 평했다. 고집이 새고 우락부락한 것이 태산의 교악과도 같다는 것이다.
한편, 전라도를 무고는 풍전세유라 했다. 살기가 어려우니까 바람에 간들간들 나부끼는 버드나무가지처럼 남의 눈을 살펴가며 요리조리 흔들거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라도 사람들이라고 처음부터 살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땅도 기름지고 넓다. 우리 나라 8도 중 7도가 다 흉년이 들어도 전라도만 풍년이면 전국의 식량 걱정은 없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 전라도가 지금은 가장 소득이 낮은 지역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까닭이야 많다.
가령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남선이라면 가장 불편한 철도 중의 하나로 여겼었다. 가물 때에나 장마가 있을 때에나 언제나 가장 혹독한 재해를 입는 곳도 호남이었다. 그만큼 지역 개발이 뒤진 것이다. 그것도 아득한 예부터의 일이다. 자연 풍전세류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난 1일에 광주권 지역 개발 1단계 사업 기공식이 있었다. 총 1백45억원을 들여 앞으로 1년 동안에 광주·목포·여수·순천 등의 지역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이게 완성된다면 총 12만2천평의 주택 단지가 다져지고, 그밖에 농산물 「센터」·수산「센터」·어항 단지 등이 건설된다.
그 다음에는 2백50억원 규모의 2단계 개발 사업이 시작된다고 한다. 반가운 것은 호남 사람들만이 아닐 것이다. 1단계 사업에서는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라북도 쪽이 빠져 있다. 또 사업 계획에도 주택 단지가 중점이 되어 있다.
따라서 당장에 호남 사람들의 소득이 증대되리라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제아무리 정조와 규장각 선비들이 재치 있다 해도 이젠 팔도를 사자평설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우리 나라도 고루 자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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