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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와 불평을 용기와 슬기로…|박요한 신부<성공회 서울동대문교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불완전한 정황에 대해 불평만을 일삼기 쉽다. 또 우리는 미흡한 삶의 조건에 대해 도전의식을 일깨우기보다는 실의에 젖어 있기가 쉽다.
불평과 실의는 과연 언제까지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또 우리들 인간의 귀함은 어두운 실의와 불평 속에서 시들어 가야 만 할 것인가?
귀에 익은「블레셋」의「골리앗」장군과「이스라엘」의「다윗」이란 소년과의 대전 이야기가 다시 새삼스러워진다.
후에 임금이 된「다윗」이란 소년은 당시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다. 형제 중 막내인 「다윗」은 전쟁터에 나간 형들을 대신해서 노 부모님을 모셔야 했기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블레셋」군대와 대진하고 있는 전쟁터의 형님들에게 먹을 음식과 곡식도 갖다 줘야 했다.
그런데 하루는「블레셋」의「골리앗」이란 장군이 대 전장에 나와 교만과 모욕적인 언사로「이스라엘」군대를 향해 외쳤다. 겁에 질린「이스라엘」병사들은 두려워 도망했다. 이를 본「다윗」은 자신이 출전할 것을 마음먹고 「사울」왕에게 이 뜻을 전했다. 「사울」왕은 나이 어린 소년이라 거절했지만 굳은 신념을 갖고 간청하는 「다윗」에게 자기와 군복과 투구·갑옷·칼까지 채워 주고는 출전을 허락했다. 군복을 입고 갑옷과 투구를 쓴「다윗」은 시험삼아 걸어 보다 익숙치 못해 벗어버리고는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고 물매를 들고「블레셋」군대의 진영을 향해 달려나갔다.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의 차림으로 전쟁터엘 나간 셈이다.
이를 본「블레셋」의「골리앗」장군은「다윗」을 업신여기며 날짐승의 밥이 되게 하겠다고 호통을 쳤다. 「다윗」은 이 같은 말에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다가오는「블레셋」군대를 향해 빨리 달려가면서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돌 하나를 꺼내 물 매질을 해서「골리앗」장군의 이마를 맞혔다. 마상에서 쓰러져 떨어진「골리앗」의 모습을 본「블레셋」군대들은 제각기 도망을 하고「이스라엘」에 승리가 주어졌다.
결국 투구와 강 창의「골리앗」이 가냘프고 원시적인 차림의「다윗」소년에게 패하고 말았다.
빈틈없는 군비의 호조건과 완벽한 정황의「블레셋」군대가 불완전했고 미숙했던 조건의「다윗」에게 패한 데는 바로 미비한 정황 속에서도 물매와 돌을 집는 용기가 있었던데 있다. 미숙했고 불완전에 실의와 퇴진을 해야 했던「이스라엘」병사들에게「다윗」의 출현은 그야말로 승전을 안고 온 절호의 용기와 슬기였다.
「다윗」의 용기는 하나님의 귀함이 깃 들어 있기에 인간의 귀함이 존중히 여겨져야 한다는 슬기에서 비롯됐다.
그러니까 인간의 귀함이 있는 곳에는 비록 불완전하고 미흡한 정황일지라도 그 속에는 반드시 어두운 실의와 절망이 아니라 밝은 희망을 위한 작은 물매와 매끈한 돌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골라 집어 주머니에 넣는 용기와 활용의 슬기일 뿐이다.
우리는 일제하에서의 불행과 미흡한 생활조건을, 그리고 6·25동란의 전화 속에서 굶주림과 노략질을 당하는 비참함을 체험했다.
비참한 현실들을 덮고 일어서게 한 밑바탕은 백의의 단일민족이란 얼이었다. 이처럼 귀한 백의의 얼은 위난의 역경과 미흡한 조건에서 한층 더 강하게 부각돼 왔다. 쓰러지고 넘어지는 불완전하고 미흡한 역경의 생활조건에서 실의와 불평이 모두일 수는 없다는 것도 뼛속깊이 깨달았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역경과 불완전함에 대한 불평을 이겨낸 하찮은 물매와 매끈한 돌! 그리고 어두운 삶의 정황을 이겨내는 옹기와 슬기는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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