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자식 치다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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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기러기아빠, 펭귄아빠, 참새아빠-. 유학 간 ‘자식 치닥거리’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 고군분투하는 아빠들을 부르는 신조어다. 아내와 함께 어린 자녀를 유학 보내고 한 해에 한두 번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기러기아빠도 고달프지만 여유가 없어 가족을 못 보러 가는 펭귄아빠는 더 외롭다. 형편이 안 돼 방을 얻어 아내와 자식만 강남에 보내는 참새아빠도 있다.

 이 시대 아빠들을 설명할 때 ‘자식 치닥거리’란 말을 곧잘 사용하지만 이는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현이다. 남의 자잘한 일을 보살펴 도와주는 것을 가리키는 말은 ‘치닥거리’가 아니라 ‘치다꺼리’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자식 치닥거리에 쏟는 부모의 정성은 변함이 없다” “청년실업률이 높아질수록 부모는 자녀 치닥꺼리에 더 허덕일 수밖에 없다”와 같이 써서는 안 된다. ‘치닥거리’와 ‘치닥꺼리’를 ‘치다꺼리’로 바루어야 한다.

 ‘치다꺼리’ 앞에 ‘뒤’라는 말을 붙여 뒤에서 일을 보살펴 도와주다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역시 ‘뒤치닥거리’로 써서는 안 된다.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뒷바라지’를 떠올려 ‘뒷치닥거리’ ‘뒷치다꺼리’로 적는 경우도 있지만 거센소리인 ‘ㅊ’으로 시작하므로 사이시옷을 넣을 필요가 없다. ‘뒤치다거리’ ‘뒤치닷거리’로 표기하는 사람도 종종 있지만 ‘뒤치다꺼리’가 표준어다. 어원이 불분명한 말은 그 원형을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게 원칙이다. ‘(뒤)치닥’이란 명사는 없다. ‘(뒤)치닥+거리’의 구조로 볼 수 없으므로 소리 나는 대로 ‘(뒤)치다꺼리’를 표준어로 삼은 것이다.

 ‘거리’는 어미 ‘-을’ 뒤에 쓰여 내용이 될 만한 재료(일할 거리, 마실 거리), 시간의 길이를 나타내는 명사 뒤에 사용해 제시한 시간 동안 해낼 만한 일(한나절 거리), 수를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제시한 수가 처리할 만한 것(한 입 거리, 한 사람 거리)을 뜻하는 의존명사로 띄어 쓴다. 단 ‘국거리, 간식거리, 김장거리, 고민거리, 걱정거리, 반찬거리, 웃음거리, 일거리, 읽을거리, 이야깃거리’ 등 하나의 단어로 굳어진 것은 붙여 쓴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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