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규제 개혁 관련 끝장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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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2014년 3월 21일자 34면>
끝장토론,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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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청와대에선 규제 개혁 장관회의가 열렸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민간인 60여 명과 관계부처 장관까지 모두 160여 명이 참석해 이른바 ‘끝장 토론’도 펼쳤다. 토론 시작부터 기업인들은 자동차 튜닝, 푸드 트럭, 공장 진입로, 인턴 지원자격, 공인인증서 등 각종 규제의 폐해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TV 생중계로 회의를 지켜본 국민이라면 이 나라가 왜 규제왕국으로 불리는지, 박근혜 대통령이 왜 규제를 ‘암덩어리’ ‘쳐부숴야 할 원수’로 부르는지 잘 알게 됐을 것이다. 끝장 토론이 노린 것 중 하나가 규제 철폐에 대한 국민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었다면 충분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토론은 기업인 질문→장관 답변→대통령 코멘트→장관 재답변→다시 대통령 코멘트 형식으로 이뤄졌다. 토론 중간 수시로 박 대통령이 끼어들어 즉석 민원해결사 역할도 했다. 129 시스템을 거론하며 “국민이 모르면 애쓴 공이 없다”며 홍보를 강조하는 특유의 스타일을 드러내기도 했다. 장관들의 규제 철폐 약속은 국민 앞에 생중계됐다. 과거처럼 대통령 앞에서만 약속하고 돌아서면 나 몰라라 하는 행태를 되풀이하기엔 뒷목이 켕기게 됐다는 의미다. 이런 TV 생중계 토론을 한 달 또는 분기별에 한 번씩 정례화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그 자체가 규제 개혁의 강력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규제 개혁 해법도 총망라됐다. 정부는 이날 규제를 새로 만들려면 그만한 비용이 들어가는 기존 규제를 폐지하는 규제비용총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미등록 규제는 원칙적으로 폐지하되 안 되면 일몰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2016년 정권 말까지 최소 20%의 규제를 철폐하겠다며 목표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했다. 규제총량제는 참여정부 때 처음 도입했지만 건수 위주로 운영돼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엔 규제총량제를 비교적 성공리에 운용 중인 영국 모델을 참조해 규제 철폐 효과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영국과 달리 규제를 건수 위주로 등록하고 있어 비용 위주로 바꾸려면 비용 측정·평가 모델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제도만 촘촘히 짜는 것으로 그쳐선 곤란하다. 중앙 정부 부처들의 규제 고삐를 푸는 것에만 그쳐서도 안 된다. 풀뿌리 규제까지 원스톱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 규제의 정점은 지방자치단체 일선 공무원이다. 마지막 단계인 지자체 공무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중앙부처 규제를 열심히 풀어봐야 헛일이다. 중앙부처와 달리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도 잘 먹히지 않는다. 선출직 지자체장들은 대통령보다 지역 주민 민원을 우선시한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보이는 규제만 풀어서도 안 된다. 말단으로 갈수록 법적 근거도 없이 내부지침이라며 기업을 옥죄는 경우가 많다. 이런 ‘보이지 않는 규제’까지 낱낱이 뒤져 없애야 한다. 특히 환경·노동·산업 등 여러 부처에 걸쳐 있어 한꺼번에 풀지 않으면 안 되는 덩어리 규제는 대통령이 직접 챙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번 끝장 토론이 일회성 행사로 그쳐선 안 된다. 말은 끝장 토론이지만 사실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한겨레<2014년 3월 20일자 31면>
규제 개혁, 옥석 가리기에서 출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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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대적인 규제완화에 나설 기세다.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 회의의 형태를 보거나 여기에 안건으로 올린 ‘규제시스템 개혁방안’의 내용을 보면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이 회의를 ‘끝장 토론’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규제개혁이야말로 ‘경제혁신과 재도약’을 하는 데에서 돈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유일한 핵심 열쇠” 따위의 얘기를 했다. 박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크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규제완화가 옥석을 가리지 않은 채 몰이식으로 진행되면 되레 국민의 후생을 떨어뜨리고 경제에 해가 될 수 있다.

 규제를 풀어야 할 분야가 꽤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현실에 맞지 않는, 경제·사회의 진화를 가로막는 것들이다. 박 대통령이 즐겨 입에 올리는 ‘손톱 밑의 가시’ 같은 규제 가운데 이런 게 적지 않을 것이다. 관료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거나, 먼저 진입한 경제주체들이 ‘지대 추구’ 형태로 기득 권익을 유지하기 위해 낡은 규제를 끌고 가려고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방식으로 퇴행적 규제만 콕 찍어서 풀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네거티브 방식을 원칙으로 일몰제와 총량제를 도입하는 한편, 감축 목표까지 세워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규제 가운데 적어도 20%를 박 대통령 임기 말까지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럴 때 꼭 필요한 규제가, 없애야 할 규제에 묻혀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대통령이 이른 시일 안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도록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관료들이 대통령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무리수를 둔 적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규제의 당사자, 그중에서도 대기업의 민원을 이참에 별다른 검증 없이 들어줄 수도 있다고 하면 지나칠까.

 이런 우려가 군걱정이 되게 하려면, 없애야 할 규제와 두어야 할 규제를 잘 가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경제주체들이 납득하고 제대로 추진될 것이다. 규제개혁 성패가 여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도 이날 “규제 합리화를 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취지의 얘기를 했다. 대통령의 이 말이 빈말이 아니길 바란다.

 별다른 구실을 못하는 규제개혁위원회를 개편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이해당사자가 골고루 참여해 적절한 논의를 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규제완화의 편익과 비용을 제대로 분석해서 규개위 논의를 뒷받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규제에 따른 영향 분석을 하도록 제도가 갖춰져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관련 연구기관을 비롯해 학계와 시민단체 전문가나 활동가를 모아서 실무 분석작업을 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규제를 잘못 풀면 어떤 위험한 상황이 닥치는지를 우리는 계속 목도하고 있다. 나라 안에서는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나라 밖에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1년 일본 원전사고가 빚어진 게 대표적이다.

논리 vs 논리
중앙 "규제철폐 일회성 안 되게" 한겨레 "필요한 규제는 남겨야"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 개혁에 대한 의지는 매우 강해 보인다. 이런 의중을 잘 드러낸 것이 지난 3월 20일 끝장 토론 형식으로 열린 규제 개혁 장관회의였다. 이날 회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민간인 60여 명과 관계 부처 장관까지 무려 160여 명이 참석한 대통령 주재 회의였다. 지상파 3사를 비롯해 종편 등 많은 TV 채널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정부가 규제 개혁에 대해 이처럼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은 그만큼 각종 불필요한 규제가 경제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문제 인식 때문이다.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규제 개혁의 방법과 속도, 범위 등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입장이 공존한다.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규제는 시급히 개혁 또는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과 ‘여론몰이식으로 밀어붙이면 필요한 규제까지도 사라지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불필요한 규제에 대한 개혁이나 철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중앙일보와 한겨레 모두 이견이 없다. 다만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며 밀어붙이는 현재의 규제 개혁 방식에 대해선 입장 차가 있다. 우선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사설 제목부터 분명한 시각차를 나타낸다. ‘끝장토론,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라는 중앙일보 사설은 규제 개혁의 당위성과 시급성을 강조한 반면 ‘규제 개혁, 옥석 가리기에서 출발해야’로 제목을 단 한겨레는 보다 신중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중앙일보는 토론에서 나온 각종 규제의 폐해 사례를 나열하면서 ‘왜 이 나라가 규제 왕국으로 불리는지 잘 알게 됐을 것’이라며 규제 철폐에 대한 국민 공감을 끌어내는 데 끝장 토론이 충분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했다. 반면 한겨레는 ‘규제 개혁을 통한 경제 혁신과 재도약’이라는 박 대통령의 문제 의식에 대해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크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즉 ‘규제 완화가 옥석을 가리지 않은 채 몰이식으로 진행되면 되레 국민의 후생을 떨어뜨리고 경제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규제를 개혁 또는 철폐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각종 불필요한 규제가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방해하고 궁극적으로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암덩어리’ ‘쳐부숴야 할 원수’로 부르면서까지 규제 개혁을 부르짖고 나서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문제 인식에 공감하면서 중앙일보는 이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해법과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규제 개혁의 해법 중 하나로 제시된 규제비용 총량제를 건수 위주 등록에서 비용 위주로 바꾸기 위해 비용 측정·평가 모델을 정교화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또 제도만 촘촘히 짜는 것으로는 미흡하고 정부 부처뿐 아니라 풀뿌리 규제까지 원스톱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지자체 공무원의 변화까지를 촉구하고 있다. 법적 규제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부 지침 같은 관행까지 철저히 찾아내 실효성 있는 규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말은 끝장 토론이지만 사실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말로 결론짓고 있다. 반면 한겨레는 ‘지금의 방식으로 퇴행적 규제만 콕 찍어서 풀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먼저 던진다. 일몰제와 총량제 같은 네거티브 방식으로 감축 목표까지 세워 실행할 경우 자칫 ‘꼭 필요한 규제’가 ‘없애야 할 규제’에 묻혀 사라질지 모른다는 염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없애야 할 규제와 두어야 할 규제를 잘 가르는 일에 규제 개혁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위원회의 실질적 개편과 규제 완화의 편익·비용을 제대로 분석해 논의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지상파 3사를 비롯해 많은 TV채널이 생중계한 데 대해 일부에선 방송 편성권과 시청권 침해라는 주장을 제기하는데 두 신문 모두 이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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