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그래핀' 양산이 우리 미래에 던지는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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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반도체는 대한민국을 먹여살려온 ‘산업의 쌀’이다.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한 우리의 효자 수출 상품이다. 그러나 반도체 우위를 언제까지 누릴 수는 없다. 중국 등 경쟁국들의 도전이 거세고 반도체 기술의 한계라는 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실리콘 반도체는 아무리 초미세 가공을 해도 회로선 폭을 5나노미터(100억분의 1m) 이하로 줄일 수 없는 물리적 한계를 안고 있다.

 성균관대 연구진과 삼성전자종합기술원이 어제 내놓은 그래핀 신기술에 대해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는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핀이란 탄소 원자가 육각형으로 결합돼 평면처럼 연결된 2차원 구조를 말한다. 3차원 입체가 되면 흑연이다. 두께는 0.2나노미터인데 강철보다 100배 이상 강하고,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며, 반도체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전자를 이동시키는 장점을 지닌 ‘꿈의 신소재’로 통한다.

 이번 성과는 그래핀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래핀은 2010년 이를 발견한 과학자들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뒤 별다른 기술적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 대량생산 단계에서 그래핀 소재의 장점을 잃는 게 문제였다. 이번에 성대·삼성 공동연구팀은 게르마늄이 입혀진 기존의 실리콘 반도체 표면 위에 그래핀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핀의 장점을 그대로 살린 중요하고도 획기적인 연구성과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본격적인 상용화 단계에서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입는 컴퓨터, 종이처럼 휘고 접는 디스플레이도 당장 상용화하는 데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기술 개발의 의미가 퇴색하는 건 아니다. 실리콘 웨이퍼(기판)가 지난 50년간 반도체 산업을 키웠듯, 그래핀을 양산하는 기술이 다음 100년 동안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미래 성장동력이 될지 모른다.

 이번 연구 성과는 부단한 연구와 기술 개발만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 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반도체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후발주자에게 추월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기술 개발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선제적 대응이다. 변화 주기가 빠른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서 경쟁국들에게 기술과 가격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우리 기업과 정부, 대학이 함께 신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는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 성과가 2006년부터 나노 분야를 중심으로 시작된 산학협력 프로그램의 결과물이라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 대학의 기초기술과 양질의 연구인력, 기업의 응용기술과 경험이 제대로 결합된다면 그래핀 양산을 넘어 제2, 제3의 쾌거도 가능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