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案 처리 갈수록 불투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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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라크전 파병 반대여론이 확산하면서 국회의 파병동의안 처리 전망이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의원들에게 가해지는 파병 반대 압박이 커지는 까닭이다.

여야는 27일 분주히 오갔다. 양당 수석부총무들은 회담을 열고 본회의에서의 찬반토론자 수를 6명씩으로 제한키로 했다. 반대의원들의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청와대에도 비상이 걸렸다.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을 비롯한 정무팀은 파병 반대 의원들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와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은 이날 오찬 회동을 가졌다. 파병안 처리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이뤄진 여야 대표회동이었지만 뾰족한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신속한 파병안 처리를 위해 여야가 함께 노력하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직접 국민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기존의 원칙적 입장만 재확인했을 뿐이다.

대표 회동에도 불구하고 양당 지도부는 파병동의안 처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鄭대표의 경우 당내 파병반대파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파병을 반대하는 민주당의 한 의원은 "鄭대표에게서 '도와달라'는 전화 한통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朴대행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주도적으로 파병안을 통과시킬 경우 안게 될 정치적 부담을 의식, 굳이 나서길 꺼리고 있다. 시민단체의 뭇매를 사서 맞을 필요는 없다는 인식이다.

"파병을 찬성하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시민단체의 으름장도 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다. 민주당 설송웅 의원 등 상당수 의원에게는 "파병에 반대하라"는 시민단체들의 e-메일과 편지가 날아들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의원들로서는 주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 천정배(千正培) 의원은 "시간이 갈수록 파병 반대 의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파병 반대파는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이 강행될 경우 실력 저지도 불사하겠다고까지 말한다.

결국 양당 지휘부 모두 파병안 처리의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엉거주춤한 모습이어서 파병동의안을 둘러싼 진통은 장기화할지도 모른다.

청와대가 긴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병안 처리가 늦어질수록 북핵 문제 해결과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전략적 선택'에 흠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한 고위 관계자는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에 곤욕을 치른 탓인지, 의원들이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선언에 적잖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주사회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자신들의 의견과 다르다고 낙선시키겠다는 것은 횡포"라며 "그런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는 의원들도 문제"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남정호.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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