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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남인의 목숨건 「피난전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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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0일은 「사이공」 함락 1주년이 되는 날. 월남의 적화는 월남인들의 필사의 「피난전쟁」으로 상징되기도 했다. 공산군의 총공세와 함께 시작된 처참한 피난행진은 공산화 이후에도 계속돼 지금 태국은 재1의 난민정착지가 됐다. 다음은 영국 「로이터」통신의「 존·레스터」 기자가 태국에서 본 지난 1년간의 월남인 피난상황이다. <편집자 주>
월남 청년 「도안·단·손」씨(24)는 월남에서 지난 25일에 실시된 총선거에 관해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고국을 떠난 지 6개월간이나 되었고 정기적으로 「라디오」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엔·반·티우」 전 대통령의 구 월남공화국 정부군 중위였던 「손」씨는 월남인들은『그들의 생활정도가 월맹보다 높기 때문에 월맹과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하면서『통일 후에 「베트남」에는 자유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씨는 1년 전 월남이 공산화된 뒤 계속 공산치하에 있다가 훨씬 뒤에야 보다 나은 생활을 찾아 고국을 떠난 수백 명의 월남 난민들 중의 하나다.
그는 작년 10월 20일 「메콩」삼각주의 「봉타우」항에서 배를 타고 탈출하여 「타이」에 도착했으며 현재 「방콕」 남서쪽 약 70km의 조그만 항구인 이곳 「사무트·송크람」근처 강에 위치한 경찰서 선창에 묶여있는 소형 나무어선을 집 삼아 살고있다.
지난 3월 한 월남군 공군장교는 「헬리콥터」를 훔쳐 타고 가족과 함께 「타이」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탈출을 원하는 「베트남」인들이 월남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로는 바다뿐이다.
육로는 월맹과 「라오스」또는 「캄보디아」로만 통하고 있는데 이들 나라들은 난민들이 원하는 행선지가 아니다.
따라서 배로 탈출하는 극소수의 월남인들은 운이 좋으면 서쪽으로 항해한 후 「타이」나 「말레이지아」에 닿게되며 동쪽으로 항해하는 경우에는 「필리핀」에 닿게된다.
3주 전에는 65명의 피난민을 태운 2척의 배가 「마닐라」 남서쪽 5백 80km의「팔라콴」섬에 도착했다.
그러나 작년 월남이 공산화될 때의 대규모 탈출을 제외하고는 최근의 월남 피난민들 중 대부분은 「타이」에 상륙한다.
이들은 탈출도중 폭풍우, 연료나 음료수의 고갈 또는 무장「트롤」어선들과의 조우 등 수 없는 위험에 부닥치게 된다.
4월초 「타이」 남동부 「찬타부리」성에 어선을 타고 도착한 31명의 월남 난민들은 그들과 함께 월남을 떠난 다른 한 척의 배가 서쪽으로 항해도중 「캄보디아」해군 포함에 의해 격침됐으며 탑승자들의 운명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 「타이」정부 난민담당관리는 많은 월남 난민들이 항해가 서투른데다가 나침반도 없이 태양을 보고 항로를 잡고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한 피난선은 「타이」해안으로 향하다가 「타이」만의 「스칸디나비아」 해저 석유시추 선과 충돌하여 덕분에 석유기술자들로부터 먹을 것도 얻고 항로안내까지 받은 일이 있다.
현재 「타이」연안에는 약 2백명의 「베트남」 난민들을 태운 7∼8척의 목제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다.
작년에 「인도차이나」 각국에서 흘러 들어온 대규모 피난민들의 처리에 골치를 앓고있는「타이」 당국은 피난민들의 「프랑스」나 미국 또는 다른 서방국가들에 대한 입국신청이 처리될 때까지 그들의 상륙을 허용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선상 피난생활을 하는 월남인들은 미국이나 「프랑스」에 친척이 있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입국허가신청을 내놓고 그 동안 연해에서 살고있는 것이다.
구 월남군 중위였던 「손」씨와 그의 아버지(50), 누이동생, 그리고 7가구의 피난민 27명은 작년 10월 「봉타우」를 떠났는데 모두 「가톨릭」신도이고 대부분이 어부인 이들은 월남공산화 직후 탈출을 계획했었다.
『「베트콩」은 「봉타우」의 모든 어선에 대해 하루에 2백ℓ의 석유를 주었다』고 선주인 「만·벤·티엠」씨(30)는 말했다.
『우리는 충분한 연로가 모아지자마자 아녀자들을 2척의 어선에 숨긴 채 고기잡이 나가는 배처럼 가장하고 한밤중에 떠났다』고 그는 탈출당시의 경위를 설명했다.
그들은 소형 군용나침반을 사용하여 한 때 「티우」대통령을 위해 파병까지 해준 나라로 그들이 기억하고 있던 「타이」를 향해 진로를 잡았다.
2일간의 항해 끝에 그들은 연료가 떨어질 경우에 대비하여 1척의 배로 합류한 후 결국 8일만에 「타이」에 도착했다.
이제 이들은 「손」 중위의 형이 「로스앤젤레스」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미국 쪽을 향해 목을 늘이고 있다.
복잡한 서류처리과정과 조사가 끝나면 그들은 미국에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들을 찾는 사람들은 음식을 갖다주는 현지 주민들과 경찰관·적십자 요원 및 국제피난민기구 관리들이 대부분이다.
「손」 중위는 모두가 친절히 대해준다고 말했으나 난민들은 배를 떠날 수는 없다.【로이터 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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