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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도 「제로」의 시민「아파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어느 때 어느 곳을 막론하고 도시에는 불량주택지역이 있게 마련이다.
거대도시로까지 발달한 우리의 수도 서울에도 불량주택지역이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변두리 경사·구릉지대의 판자촌과 금화·낙산·창신 등 시민「아파트」군이 그 대표적인 것으로 꼽힐 수 있다.
산비탈에 빽빽이 세워진 이들 「아파트」단지는 도시경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언제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르는 위험성을 항시적으로 내포하고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른바 와우「아파트」붕괴사고를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그에 버금가는 대형사고가 이 시민「아파트」단지에서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데 지난 19일엔 또다시 어린이가 추락하여 목숨을 잃은 참사가 2건이나 일어났다. 낙산 시민「아파트」앞 암벽과 응봉 시민「아파트」의 난간에서 놀던 두 어린이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숨진 것이다. 어른들의 잘못에 의해 애꿎게 희생된 어린 목숨이 가엽기만 하다. 눈물어린 맑은 눈동자가 변변치 못한 어른들을 원망하듯 바라보고, 고통에 찬 비탄이 우리들 흐려진 양심에 비수처럼 박히는 착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 어린이의 불쌍한 죽음을 어이 박명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으며, 가슴 찢기는 아픔이 어찌 그 부모들만의 일이겠는가. 더군다나 이번에 사고가 난 절벽은 7년 전에도 바로 같은 장소에서 한 어린이가 떨어져 목숨을 잃었을 뿐더러 이 일대에서는 해마다 3, 4건의 사고가나고 있는데도 아무런 안전대책이 강구되지 않았다니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사람의 주거를 짓는다 하면서 벼랑 위에 집만 덜렁 세워놓고 그 위험한 암벽에 철책조차 만들어놓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귀중한 어린 목숨이 잇따라 죽어 가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듯, 위험을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다니 이런 일이 어찌 용인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사태의 심각성은 비단 이 낙산 시민「아파트」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지대에 세워진 모든 시민「아파트」에는 빈터도 어린이 놀이터도 거의 없어 어린이들이 절벽이나 비탈 등 위험한 곳에서 놀다가 변을 당하기가 일쑤라고 하는데도 관계당국은 어째서 손을 쓰지 않고 있는가. 직무태만을 탓하기에 앞서 인도적인 견지에서 공분이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와우「아파트」사고를 계기로 시 당국은 두 번 다시 그런 엄청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 이미 상당한 자금을 투입하여 보수공사를 벌였고 결국에 가서는 아예 철거까지 했는데도 이들 시민「아파트」의 부실상은 여전하며, 위험도가 조금도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인도정신의 마비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당국은 앞으로 5년 안에 4백 35동의 시민「아파트」중 95동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헐어버린다고 하나, 그때까지라도 미비한 시설의 개선과 안전시설의 보완은 잠시의 유예도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시민「아파트」들은 시공 당초부터의 날림공사로 말미암아 이제 사실상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저소득층이 살 「아파트」라 하더라도 그것을 세우는 이상엔 상하수도·도로·놀이터 등 「아파트」단지가 갖춰야할 최소한의 조건은 구비해야 하고 특히 사고를 막는 안전시설만은 마땅히 갖추어 놓았어야 했을 것이 아닌가.
모든 도시엔 불량주택지역이 있게 마련이지만, 사람의 목숨까지를 앗아가는 안전 「제로」지대를 언제까지나 그대로 버려 둘 순 없다. 당국은 깊이 각성하여 더 이상의 사고가 나지 않도록 서둘러 모든 시민「아파트」의 안전점검에 착수하여 적어도 목숨을 잃는 일 따위는 근절하는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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