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몰린 서독 사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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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의회에서 절대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해 중도적인 자민당(FDP)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서독의 사민당(SDP)정권이 언젠가는 자민당이 이탈하리라는 가능성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 69년「브란트」수상, 「셸」외상으로 출범한 사민·자민연립정권은 그 동안 독소조약 등 화려한 동방정책을 성공시키며 밀월시대를 보내왔다. 이때 사민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캐스팅·보트」를 쥔 자민당의 참여덕분이었다.
자민당은 서독 중산층의 자유주의자들을 기반으로 한 정당으로 연립정부구성 전까지는 체질적으로 오히려 보수당인 기민당과 더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외교정책 면에서 사민당의 동서화해 정책에 공감하던 69년 당시의 「셸」당수(현대통령) 등 당 지도부는 사민당과의 제휴를 택했다. 당시 독일을 둘러싼 주변상황이나 연정에 의해 타결된 동방정책의 성과로 보아 자민당의 선택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자민당은 그러나 외교정책 면에서는 사민당과 견해를 같이 해왔으나 세제문제·경기대책 등 국내문제에서는 마찰을 빚어왔다. 경제관계 등 국내문제에 관한 한 야당인 기민당의 정책에 더 가까운 편이었다. 일단 동방정책도 매듭단계에 들어선 이제 자민당의 사민당에 대한 협조필요성도 거의 없어진 상태다.
이러한 상태에서 3월초 독파협정비준을 싸고 사민·자민의 견해가 엇갈려 두 정당의 연립관계가 정산될 시기가 서서히 다가오는 게 아닌가하는 예상이 대두되고있다. 서독이「폴란드」에 경제협조를 하는 댓가로 「폴란드」 영내에 거주중인 독일인의 서독으로의 이주보장을 포함한 독과협정의 문귀를 두고 자민당은 야당인 기민당의 의견에 동조했던 것이다.
결국 기민·자민당의 주장대로 협정이 수정 통과되자 새삼 식민·자민 제휴가능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사민당과의 연립정권을 주도했던 「셀」대통령은 지난 5일 『연정이란 것도 시세의 흐름에 따라 언젠가는 끝장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그 가능성이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기민·자민 제휴의 가능성은 이미 지방선거에서도 비치고 있다. 지난달 「니더작센」 주의 선거에서 자민당세력이 기민당을 은근히 후원, 주정부에 자민당원이 참여하고 있다. 주정부에서의 기민·자민 협조는 총선거가 끝나는 10월 후에 「자르」주에서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자민당이 기민당과 당장 제휴하겠다고 공식태도를 밝히고있지는 않다. 자민당 당수인「겐셔」외상은 사민당과의 계속적인 협조관계를 다짐하고있다.
그러나 이는 오는 10월의 총선거에서 사민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둘 경우에만 1백% 보증할 수 있는 말이다.
정권의 지지도를 나타내는 지방선거인 지난 4일의 「바넨·뷔르템베르크」주 선거에서 사민·자민당의 지지표가 72년 선거에 비해 각기 4·3%, 1·1%씩 줄어들어 현재로서는 사민당의 인기가 하락하는 추세에 있다.
이런 추세가 오는 10월의 총선거에서 반영되어 사민당이 좋지 않은 결과를 얻었을 경우 자민당이 어떤 태도를 보일까 하는 것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프랑크프루트=엄효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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