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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 외국학자시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유럽」은 국경의 구별도 없이 자연풍경이나 촌락의 모습이 그저비슷하기만 했다.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서독·「불가리아」·「체코술로바키아」·「헝가리」· 「이탈리아」등 6개국에 싸여 있어 하늘나라에서 보면 아무런 분간이 없이 평온스럽기만 하다.
한시간쯤 「취리히」공항에서 쉬었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일로 미국으로 갔다. 「뉴요크」는 여전히 높은 「빌딩」과 사림들이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고, 미국 제2의 도시「시카고」의 커다란 호수는 겨울이건만 물이 얼지 않으며 바다와 같이 한없이 넓다. 나는 세번째 미국을 보는 셈이니 모든 것이 별로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좀 달라진 것으로는 그전과같이 거리에 「히피」들의 모습이 훨씬 적어졌고, 또 장발족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것도 한동안의 유행에 불과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노드웨스턴」대학등도 겨울방학이 없는지 학생들이 동교를하고 있고, 룰경기라고들 하지만, 나의 눈에는 그렇다할 궁핍의 끌이 보이지 않고 「크리스머스」경기는 여전히 흥청거렸다. 다만 남쪽 흑인들의 시가지는 낮에도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는만큼 역시 미국사회의 두통거리가 아닌가 생각했다.
「클라크」거리에는 한국사람들의 식당·가발가게·여행사·태권도장의 수가 부쩍 늘어 교포사회가 그전 보다는 훨씬 번창해진 것 같이 보였다. 이것은 아마도 최근에 한국에서 이민온 사람들이 많아진 때문이리라. 세딸이 시집가서 지내는 곳이라, 나는 그들의 생활이 한국에 있을 매보다 무척 바쁜생활을 한다는 것을 목격했다. 한국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바쁘게 일에 열중하고 또규울을 지키면 모두들 더 잘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교육도시라는 「오하이오」주의 「컬럼버스」에 있는 둘째딸을 찾았다. 미국은 언제 어디로 가든지 지역이 하도 넓어서, 한국의 좁은 땅을 생각할때마다 서글픔을 느끼게 된다.
「오하이오」주립대학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시설도 좋았다.
하루 저녁은 딸집에서 10여명의 교포들의 만찬회가 있었는데 그 속에는 우연히 성악가 고이인범씨의 아들을 만났는데 그는「오하이오」주립대학의 건축과 주임으로 취직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부친을 많이 닮았을 뿐아니라 그의 선친이 나의 작시·현제 명작곡의 『산들바람』을 불러 주었다. 아들의 목소리도 아버지와 횹사한 음색이었다.
이인범씨는 내가 연전서 가르친 제자요 또 나의 환갑잔치 때에도 자진해서 그 노래를 불러 주었던 것을 생각하고 나는 무척 기뻤다.
하루 저녁에는 딸이 사는 동네의 미국사람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10여가구가 부부동반으로 출석했는데 간단한 안주에다가 술잔을 들면서 웅성웅성 중얼거리는 「칵테일·파티」였다. 이런 모임의 분위기는 완전히 여성들을 위한 것이었고 남편들은 그저 들러리 노릇을한다. 미국은 역시 여성들의 권한이 대단함을 느꼈다.
다음에 고국으로 들아 오는길에 「로스앤젤레스」시에서 1주일을 보냈다. 여기서는 기후가 벌써 봄날씨 같아서 나는 내복과 양복을 봄차림으로 바꾸니 갑자기 계절과 함께 나는둣 했다.
이곳은 교포들의 수나 장점이 미국서 제일많은 곳이고 한국사람들의 가게가 즐비한 한국촌도있다. 거기서 제일큰 한국식당이라는 영빈관에는 「나이트·클럽」도 있어 마침그날저녁에는 여자가수 박재난이 연달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일찌기 내가 중앙대학에서 가르친 신일수군이 「유타」 대학 연극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곳 대학에서 강좌를 맡은 일이 있다는데 그의 안내로「할리우드」의 영화제작소를 관람했다. 그래서 느낀 것은 상영되는 은막의 영화장면은 굉장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촬영하는 대상의 실물은 정말 보잘것 없었다.
일례를 들면 서부활극을 위한 황무지는 실제로는 정말 환멸을 느낄만한 평범한 소규모의 지역에 불과했다. 평범한 현실을 촬영으로 예술화하면 거기는 새로운 마성(마성)이 생기는 모양이다.
또「디즈닐랜드」의 모든 시설을 보았는뎨 나는 입이 딱벌어질 정도로 놀랐다. 특히 이번에는 미국전국 2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미국역사의 가장행렬을 어린이들이 보기 좋게꾸며 시가지를 누비고 다니는것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큰 여객선 「퀸·메리」호가 항공시대가 된 후로는 영업이 안된다고 해서 페선한 것을 미국이 돈을 주고 사서「롱비치」해안에다가 정박시키고 그것을 관람시키는 동시에 「호텔」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구경했다. 미국 사람들의 상혼(상혼)에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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