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 양잠농가의 절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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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의 견사수입규제 움직임에 항의하는 국내업계의 합성이 충천하고 있다.
우리는 이 같은 국내 잠사인들의 항의와 요구가 극히 정당하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50만 잠업인들이 궐기대회에서 지적한대로 일본 측은 오는 3월에 양국실무자회담에서 협의하기로 약속해놓고도 일방적으로 견연사 수입규제를 결정한 일본 측 처사가 매우 부당한 것임은 재론할 여지조차 없다.
일본은 항상 대외적으로는 무역자유화나 차별 없는 교역을 강조해 왔으며, 그들의 주요섬유 수출국인 미국이나 EC에 대해서는 이를 금과옥조로 삼아왔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일본은 또 남북문제의 해결을 지향한 획기적인 이정표라 평가한바 있는「랑뷔에」회담에서도 세계무역증진위원회의 간사국으로 시종일관 자유무역의 확대를 강조했던 점 또한 잊을 수 없다.
세계무역질서가 비록 이전과는 달리 보호와 규제의 논리를 일부 용인하고 있다하더라도 이 처럼 대내·대외적 입론의 근거가 변덕스런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이런 일반론을 떠나 한·일 양국의 무역현황으로 미루어 보아도 이 같은 일방적 규제가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청구권」시대부터 비롯되어 10여 년간 우리는 격심한 교역의 불균형을 겪어왔다.
그동안 일본이 누려온 대한 출초의 이득만 해도 방대한 것이었다. 최근 수년간만해도 매년 10억「달러」를 넘는 대일 무역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무려 12억「달러」로 우리나라전체 무역적자의 절반을 차지했다. 국제적으로 보호주의가 확대되는 추세이기는 하나 이처럼 수출국에 대해서까지 그것을 철저하게 적용하는 경우는 국제관례상 매우 드문 일이다.
겨우 2억여「달러」에 불과한 견사제품의 수입이 얼마나 일본시장을「교란」시킨다는 것인가. 더우기 그들이 의회의 압력을 구실로 보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국내업계가 어째서 외국제품의 수입규제를 통해야만 보호될 수 있다는 것인가.
섬유산업의 고도화로 이미 사양화 된지 오랜 생사업종을 국제분업의 이점을 살리는 보완무역으로「커버」하고, 필요한「보호」는 별도의 국내적 조치로 충분히 대처할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일본국내에서 조차 섬유공업 심의회 등 주요 정책기관들은 수입규제가 국내 가격앙등은 물론 섬유공업의 장기적인 구조개혁에 역행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의견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일본 측이 제시하고 있는 『질서 있는 거래』에 대해서는 이론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같은 「질서」는 어디까지나 양국간의 양식 있는 협의와 합리적인 상호양보로 써만 가능한 것이지, 결코 편협한 이기주의나 경우 없는 일방조치만으로 이루어 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생사와 견사는 물론 견직물·편물제품에까지 확대시키려는 일본 측 움직임에 대해 우리정부는 차제에 결연한 자세를 보여야할 것이다.
상당한 무리와 혼란이 있더라도 대일 수입에 대한 의연한 대응조치를 강구하는 한편으로는 국제기구를 통한 조정노력에도 소홀하지 않기를 바란다.
일본 측 수급사정만 믿고 양잠사업을 적극 권장해온 정부로서는 50만호 양잠농가의 수지악화와 생계위협에도 일단의 책임을 느끼고 응분의 보상책을 마련함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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