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 중공전문가로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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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24일 UPI동양】「워터게이트」 이후「닉슨」이 무엇을 할까하고 궁금했던 사람들은 이제 그 대답을 듣게 되었다.
중공지도자들은 「닉슨」전대통령에게 중공의 비공식대변인이라는 새로운 정치역할을 부여했으며 이에 따라 「닉슨」은 일정 형태의 강경파 재야미국인들에게 중공을 대변하게 되었다.
이것은 중공이 미국과 특히 일본과 관계를 맺기 전에 사용한 수법이며 이 것이 바로「닉슨」북경 행의 이유이다.
9일간의 「닉슨」방중은 그의 새로운 역할의 첫 단계이다. 미국인이 볼 때 그는 자격증을 가진 중공전문가로 등장하기 위해 북경에 갔다. 그는 귀국할 때쯤이면 누구에게든 감명을 줄만한 중공전문가가 될 것이 틀림없다. 많은 미국인들이 갑자기 등장한 화국봉 수상서리의 충격파를 놓고 점을 치고 있을 때「닉슨」만은 그 진상을 알 것이다.
그의 딸과 사위를 제쳐놓으면 「닉슨」은 중공의 최근 청치파동 발발이 후 당 주석 모택동과 단독 「인터뷰」를 한 유일한 사람이 될 것이다.
과거 매우 관심 깊은 인사들이 「닉슨」이 요즘 떠맡은 역할을 해왔다.
작고한 「에드거·스노」기자는 50년대와 60년대에 중공수상 주은래와 중공에 관심을 가진 미국인들간의 연락원이었다.
전 「프랑스」문화상「앙드레·말로」도 「유럽」지성인들에게 중공 연락원 역을 했다.
중공의 그 같은 수법은 주가 일본의 외교적 승인을 얻으려고 애쓰던 l960년대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고「사또」전 일본수상이 대만의 반공정부와의 유대를 고수하고 있을 때 주는 「사또」를 제쳐놓고 중공의 대변인을 물색했다.
「옥스퍼드」출신의 일본귀족 「사이온지」씨가 바로 이 역을 맡아 일본언론과 지식인들에게 비공식적이지만 권위 있는 중공소식을 전해주었다.
또 설탕 업계의 거물이며 보수파의원인 「후지야마·아이이찌로」의원은 일본실업계에 중공 측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사람으로 선정됐었다.
그들은 기초를 너무도 잘다져 놓았기 때문에 「닉슨」이 1972년 중공과의 화해정책에 착수하자마자 일본은 대만을 버리고 북경공산당정부승인으로 급선회했다.
「닉슨」이 귀국하면서 가지고 올 것으로 예상되는「메시지」가운데 하나는 소련의 힘이 너무 강대해졌으며 이 같은 소련의 세력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과 중공이 협력할 시기가 왔다고 보는 중공 측의 견해이다. 만일 이 같은 중공 측 견해가 장차 미국외교 정책방향에 투영된다면「닉슨」은 앞으로 이러한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어떤 권력의 중심권에 재부상, 막중한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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