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산품 수출하듯 하면 필패, 문화로 공략하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음식과 미식(美食·gastronomy)은 다르다. 유네스코가 인류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건 프랑스 음식(food)이 아니다. 요리(cuisine)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미식 문화다. 미식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 담는 그릇, 내놓는 공간과 먹는 매너, 곁들이는 술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이다. 프랑스 미식을 경험하기 위해 여행객들은 파리행 비행기에 오른다. 프랑스 요리학교는 세계로 뻗어나가며 일자리를 창출한다.

한식은 왜 안 될까. 음식을 넘어 미식의 수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포기는 이르다. 문화융성의 첨병으로서 한식 세계화는 선택 아닌 필수다. 한식 세계화 2막의 성공 레시피를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레시피 1: 눈앞 성과 대신 장기전략을
도자기 기업 광주요의 조태권 회장이 2008년 한식당 가온을 창업했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30만원 홍계탕(홍삼·전복 삼계탕) 등 가격도 논란거리였다. 곡절 끝에 가온은 폐업했다. 조 회장은 그러나 전통 증류 소주 ‘화요’를 출시했고 2012년엔 차녀 조희경 대표와 한식당 ‘비채나’를 열었다. 화요는 주류 평가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비채나는 미식가들 사이 필수 코스가 됐다. 그런 그가 꼽은 한식 세계화의 제1레시피는 ‘시간’이다. 한식 세계화 백년지대계를 세우자는 얘기다.

한식 세계화 실패 이유에 대해 그는 “공산품 수출하듯 한식 세계화를 했다”며 “한식의 총체적 역량을 길러야 하는데, 정권 5년 안에 해치우려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음식의 뿌리부터 공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무엇을 세계화해야 할지를 모르니 지난 5년간 한식재단·문화체육관광부·농림축산식품부에서 엇박자가 났다는 업계 안팎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현장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레스토랑 평가지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점을 받은 뉴욕 ‘정식당’의 오너 셰프 임정식씨는 “전시성 행사는 방해만 된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레스토랑 ‘테스트 키친’의 박무현 셰프는 “발효에 시간이 걸리듯 한식 세계화에도 시간은 필수 재료”라고 했다.

레시피2: 삶에 녹아들 행사 열어라
한식 세계화엔 돈이 든다. 문제는 어디에 쓰느냐다. 들어간 돈은 있는데 나온 효과는 없는 게 실패 이유다. 전시용 한식 체험 행사가 대표적이다. 외국 유명 호텔에서 현지 VIP들을 모아 놓고 한식 코스를 대접하는 이런 행사의 예산은 수천만원이 기본이다. VIP를 통해 사회 전반으로 한식을 보급하겠다는 하향성 행사도 의미는 있다. 문제는 일회성이라는 것. 임 셰프는 “일등석 타고 와서 한국인이 80%인 한식 행사 한 번 치르고 놀고 가는 정부 관계자들 많이 봤다”고 꼬집었다.

인도에서 한식 행사를 치른 경험이 있는 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이사장은 “행사 후 인도 호텔에 한식 메뉴를 포함시켰다”며 “그네들 삶에 녹아들 수 있는 행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셰프들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한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이나 한식 외국어 메뉴 개발도 급선무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외과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식 관련 블로그 ‘젠 김치’ 운영자인 미국인 조 맥퍼슨은 “한식 메뉴가 발음이 어려워 세계화가 안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매력이 있다면 누구나 습득하려는 노력을 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남아공의 박 셰프는 “미식가들은 생소함을 즐긴다. 한식도 외국어 소통을 강화하면 잠재력이 무궁무진”이라고 했다.

레시피 3: 전통 vs 현대, 편가르기 깨라
임 셰프는 전통과 현대를 가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정식당’ 인기 메뉴인 로열 비빔밥을 예로 들었다. 로열 비빔밥은 프렌치 요리에 많이 쓰이는 푸아그라(거위간)를 익혀 밥과 섞은 뒤 다진 김치와 얇게 저며 튀긴 표고버섯에 치즈가루를 뿌린다. 임 셰프는 “세계화에 가장 성공한 나라는 미국”이라며 “맥도널드·스타벅스는 어딜 가나 있다. 맛이 있다면 아프리카든 남미든 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셰프도 “고추장을 응용한 ‘코리안 소스’를 곁들인 쌀 요리인 ‘Bibimbap’을 내놓았는데 반응이 좋았다”며 “전통을 응용해 현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통을 보호한다는 일부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 회장은 “전통 방식을 연구해 증류 소주를 만들었는데 국내 법 규정 때문에 전통주로 인정을 못 받고 있다”며 “자동차를 개발한 국가는 영국이지만 이를 발전시켜 돈을 번 나라는 독일인 것처럼 우린 증류 소주 주도권을 일본에 빼앗겼다. 이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오히려 우리 정부 규제가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오피니언리더의 일요신문 중앙SUNDAY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패드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탭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앱스토어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마켓 바로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