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부의 대폭적 인사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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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임 박 외무의 취임과 대사 4명의 국회진출, 그리고 외교망의 확충에 따라 상당수의 외교공관장과 외무부본부 간부인사 이동이 뒤따르리라는 것이다. 대사급 외교관의 대폭 개편은 2년 만이지만, 외무부에는 연중대소 인사이동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임지 「로테이션」이라는 외무부 특유의 인사제도에서 부분적으로 연유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요즘과 같은 연중 인사바람은 외교관들의 안정된 직무수행을 위해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더구나 외교관의 인사이동은 다른 공무원처럼 자리만을 바뀌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임지와 생활근거가 모두 바뀌는 것이다. 외교관 자신 뿐 아니라 그 영향은 가족들의 생활과 교육에까지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외교관은 한번 임지가 결정되면 가급적 3년 정도의 안정정 근무가 보장되는 게 좋다.
요즘처럼 장관이 바뀌었다는 이유라든지, 단기 특수지 근무를 시키기 위해서라든지, 또는 포상이나 징계조치의 일환 등의 이유로 자주 인사이동을 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는 외교관 개인에게도 고통일뿐더러 외교 역량과 재정의 낭비를 수반한다. 어느 임지에서 건 현지 정세에 익숙해지고 지면을 넓히려면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 이러한「오리엔테이션」단계를 지나 본격적으로 일에 익숙할 즈음에 자리가 바뀌어선 외교활동의 지속성이란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제는 이러한 과객인사나 응급외교의 단계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대사 등 고위외교관의 기용에는 직업외교관의 내부 승진과 정치적 임용의 두 가지 길이 있다. 두 방법은 모두 그 나름의 장단점을 갖고 있다. 우선 정치적 임용의 경우에는 전문적소양의 부족으로 인한 여러 문제가 따른다. 반면 인선만 잘하면 열성이나 정치적 감각에 있어 직업외교관들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익숙치는 못하지만 열성이 있다는 것이 대체로 외부에서 임용된 대사들에 대한 평판이다. 물론 이런 긍정적인 평가는 외국어에 능숙하고 자질이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개중에는 일은 부하직원에게 맡기고 무언거사로 세월만 보내다가 돌아온 대사의 얘기도 없지 않다.
따라서 내부승진과 외부임용 중 어느 쪽이 좋다고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고, 요컨대 얼마나 자격 있는 인물을 기용하는가에 달렸다고 보는 게 옳다. 다만 그 비율에 있어선 직업외교관의 비중이 높은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으레 훈련된 직업외교관이 승진의 길이 막혀 사기가 떨어져선 안되겠기 때문이다.
대사를 외부에서 임용할 경우에도 외교외적 고려가 아니라 외교수행의 필요라는 외교 내적 요청이 중시되어야 한다. 외교에 보탬이 될 사람이 아니라, 짐이 될 사람이 임용되어서야 되겠는가.
전반적으로 외교관의 인사에 있어선 직업 관료적인 타성을 없애고 끈기와 열의, 그리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최우선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전세계에서 북괴의 치열한 외교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외교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어려운 일을 해내야만 한다. 이는 지략과 강인한 끈기, 그리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추진력 없이는 수행하기 어려운 과업이다.
우리 외교관들은 우수하긴 하나 안이하다는 얘기를 흔히 듣는다. 이런 평가가 불식되려면 외교관들의 훈련과 인정제도의 운영이 그런 방향으로 경주될 필요가 있다. 어려운 일을 해낸 외교관·생활조건이 나쁘거나 남들이 꺼리는 임지에서 고생한 외교관·외국어 구사능력이 뛰어난 외교관을 인사·보수면에서 우대하는 제도적 유인을 주어야 할 것이다. 직업외교관 제도의 안정성이 결코 타성에 젖은 일부외교관을 보호하려는 것아 아님도 잊어선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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