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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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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리나라의 주부들은 사회의 변천과 함께「조용한 혁명」을 맞고 있는 것 같다. 대가족중심에서 소가족중심으로, 낡은 주택에서 새로운 주택으로, 전통지향에서 능률위주로, 그 조용한 혁명은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역할, 가정에서의 지위, 남편과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이들은 건강하고 밝은 사고방식을 지키고 또 향상시켜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본사는 신년을 맞아 주부들에게 바람직한 생활좌표를 제시하기 위해 서울의 신흥주택을 중심으로 의식조사를 실시했다.
중산층「아파트」·갈현동 일대의 주택가, 그리고 신당동 일대를 대상으로 1천장의 설문지를 나누었다.
응답을 한 주부는 7백32명. 2회에 걸쳐 이들 응답을 분석, 소개한다. 설문의 작성 및 조사는 이상희교수(서울대신문학)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의 생활은 사회의 변천과 함께 새로운 변화들을 맞고 있다. 의·식·왕의 구조에서도 그렇지만 의식에 있어서도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평균연령이 30대이고 30%가 대가족제이기는 하나 70여%가 핵가족의 구성원들인 이들 주부들의 생활이 서구화하고 있음은 식생활과 주생활 조사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된장 안담근다 33%>
우선『올해 된장을 담지 않았다』는 주부가 33·7%나 됐는데 신혼을 제외한 대부분은 최근 5년사이에 된장을 담아 먹지 않는 생활습관을 들이고있었다.
그 다음 63·6%의 주부가 이제는 한식, 재래부엌의 불편에서 벗어나 입식에서 일한다.
신혼, 혹은 새집 장만등으로 인해 입식부엌을 갖게된 가정도 많지만 1년전, 혹은 2∼3년전, 5년전, 공사를 벌여 개조한 수가 그중 반가량이 된다.
도시주부들은 생활환경을 개조하는데 열심일 뿐 아니라 매일의 살림도 계획을 짜 꾸러나간다. 살림방법도 이제는 서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장보기를 할 때 단 9·8%를 제의한 모든 주부가 예산을 세워 살 물건의 목록을 미리 짜본다. 또 가계부도 쓰지 않는 주부는 31·1%인데 쓰는 주부는 68·9%다.

<식생활 고치기 힘들어>
생활과 살림방법은 이처럼 전체적으로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개조돼가고 있다. 그러나 생활중 식생활은 가장 전통적인 취향이 지켜지고 있는 부문이다. 식생활습관은 오랜 기간에 길들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개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때문인 듯. 구체적으로 올해 김장을 하지 않았다는 가정은 불과 1%미만에 그치고 오히려 대부분의 가정은 5∼10포기씩 많은 양에 더 많은 정성을 들여 김장을 담갔다.
빵과「수프」로 조반을 데신 하기를 지키는 가정은 14·9%에 그칠뿐 85%이상이 반드시 조반으로 밥을 해먹고있다.
밥보다 빵을 먹으면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탓도 있지만 식생활 습관은 전통적인 한국식이 지켜지고 있다는 단적인 예다.
한편 도시주부들은 생활과 달리 의식구조에 관해서는 철저히 보수성을 견지하고 있다. 부부사이는『친구와 같은 사이』보다 『서로 존경하는 사이』가 이상적이라고 보는 부부관에서부터 자녀관·자신의 장래희망사항에 이르기까지 이 보수성은 여실히 보여진다.

<모든 생활은 남편 위주>
『자신의 일생은 자녀들의 장래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여기는가』에 관한 설문에서 『크게 좌우된다』고 답한 주부가 70%이상이다. 핵가족화가 밀려들고 개인주의가 팽배해도 자녀에게 자신의 일생을 거는 전통적인 자녀관은 크게 변모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장래희망으로 대부분의 주부들은 먼저 남편에 관계된 일, 자녀에 관계된 일을 꼽고 자신의 관계된 일은 나중으로 돌린다.
부당한 방법으로 획득되는 남편의 부수입에 대해서 주부들은 남편의 부수입일지라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76·4%가 명쾌하게 답변하고 있는 것은 주부들의「모럴」의식이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물가에는 매우 민감해>
나날이 오르는 물가에 대해서는 주부들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따로 물가에 관한 설문이 없었음에도 52·1%의 주부가 지난해보다『물가가 올라서』장보기 횟수를 줄이고있다고 답한 것이다.
이광규교수(서울대·사회인류학)는 본지의 이 조사결과를 보고 『전통이라는 면에서 볼때 생활구조는 개조되어 가고있지만 의식구조는 크게 변모되지 않고 있다. 생활구조중 한국식식생활습관의 고수는 한때 젊은 층에서 시도되었지만 한국실정에 맞게 되돌아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하며『부당한 방법에 의한 부수입을 용납않는 주부들의 반응은 시대가 아무리 혼란해도 절대 다수의 사람들 양심은 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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