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환상의 조화-동낭극단 『소』를 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신극사상 「리얼리즘」극의 한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유치진의 『소』(35년 작)가 성향이 다른 두 연출가(유인형·안민수)의 공동연출로 무대에 올려진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소』는 이들 선친의 작품으로 유인형이 비교적 보수적이고 「오더독스」한데 반해 안민수는 매우 감각적이고 실험적 성향을 지녔다. 또한 『소』는 식민지시대에 일제와 지주에게 수탈 당해 붕괴되는 농촌과 몰락해 가는 민족의 참상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 40년 뒤인 오늘의 관객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기우에 그쳤다. 두 연출가의 뛰어난 작품해석으로 『소』가 지나가 버린 시대극을 넘어선 것 같다.
동낭 「레퍼터리」의 『소』가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실은 반추상화 된 사실무대(조영록)와 인상적인 음악(강석희)이 뒷받침 된데서 오는 것이다. 특히 압권이었던 3막에서는 『소』 의 시대반영을 넘어서 작가의 내적 세계마저 거의 완벽하게 형상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작품 해석에는 더러 문제가 있다. 『소』를 지나치게 비극의 정석대로 몰고간 나머지 중요한 대목들이 요약돼 버리고 유자집 딸만으로 파국 뒤를 매듭지으려한 점이다. 그것은 곧 『소』가 엄밀한 의미에서 비극이냐 하는 문제와 유치진이 30세때 「아나키츰」의 입장에서 반항적으로 쓴 이 작품을 지나치게 확대해석 한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유민영<연극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