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엥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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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과자였던 「장·발장」은 일생 동안 「자벨」경사의 추적을 받는다. 그러나 오늘의「장·발장」에게는 시효라는 혜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살인을 했어도 10년 동안만 잡히지 않으면 공소시효에 걸려 무죄가 된다. 강도도 5년만 넘기면 잡을 수 없게 된다.
시효란 「장·발장」처럼 숨어 다니면서 받는 고통이 형벌에 맞먹는다고 봐서 생긴 것은 아니다. 어떤 상태가 오래 계속되어 기성 사실화하여 그 상태를 뒤집어 놓으면 오히려 혼란을 일으킬 염려가 있기 때문에 마련된 제도가 곧 이 시효다. 아무리 끔찍한 범죄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그런 것을 새삼 들춰낸다면 긁어 부스럼 격이 되기 쉽다.
7년 전에 일본에서 경관을 가장한 한 젊은이가 은행 송금차를 털어 3억「엥」을 강탈 도주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그 강도가 아무도 다치지 않고 탐정소설에서나 볼만한 깜찍한 수법으로 감쪽같이 거금을 훔쳐냈다는 것이 배금 풍조에 젖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는 「멋진」일로 보였던 모양이다.
이 범인을 잡기 위해 일본의 경시청에서는 연 17만명의 수사원을 동원하고 9억「엥」이 넘는 엄청난 수사비를 투입했다. 그리고도 신통한 단서 하나 잡지 못하고 말았다.
이런 것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는 「멋지게」 보였는가 보다. 여론조사에서도 『멋지게 해치웠다』는 게 56%나 되고 『잡혔으면 좋겠다』는 게 44%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게 현대의 병리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매스컴」도 7년의 시효가 다가오자 「흥미본위」의 취재 경쟁을 가열시켜 나갔다. 이리하여 「사이카」를 탔던 범인은 어느 사이엔가 일종의 젊은이의 영웅으로 되어 버렸다. 이제는 범인 자신이나 범죄 자체보다도 3억「엥」의 행방에 더 흥미들을 갖고 있다.
심지어는 3억「엥」을 위해 투입한 9억「엥」의 수사비는 너무 많지 않았느냐는 여론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경찰이란 범인을 잡고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있다. 국민의 생명·재산의 보호 의무가 무한정한 것이라면 이를 위한 수사비에 한도가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마치 금전상의 수지를 맞추듯 3억「엥」짜리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잡는데는 3억「엥」 이상의 비용을 쓸 수 없다는 얘기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만약에 수사비에 한도를 둔다면 거금의 범죄자들일수록 시효가 끝날 때까지 잡히지 않을 가능성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결국 3억「엥」의 범인은 버젓이 거리를 활보 할 수 있게 됐다.
비록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못하고 내놓게 된다 하더라도 그는 앞으로의 생활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오늘의 일본 사회에선 홀몸으로 천하의 경찰 대군과 7년이나 맞싸워 이겼다는 명성(?)이 그를 고액 소득자로 만들어 줄 게 틀림이 없는 것이다. 분명히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혹은 일본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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