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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하나가 우주로 급팽창’ 138억 년전 사건 증명할 열쇠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남극 아문센-스콧기지에 설치된 바이셉2(BICEP2) 천체망원경 뒤로 은하수가 펼쳐져 있다. 바이셉2 망원경은 2㎜ 파장의 빛과 100만분의 1도의 온도 차까지 구별할 수 있는 정밀관측 장비다. [남극 로이터=뉴시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는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남극에 설치한 ‘바이셉2(BICEP2)’ 망원경으로 우주가 급팽창할 때 생긴 중력파(gravitational wave)의 패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빅뱅 이후 38만 년의 암흑기를 거쳐 전자기파 형태(우주배경복사)의 빛이 온 우주로 퍼져 나갔다. 이 전자기파는 우주 어디서나 같은 온도를 가진 균일한 상태로 관측됐는데, 이 균일성을 설명하는 ‘인플레이션(급팽창) 이론’의 근거가 처음 발견된 것이다. 빅뱅의 비밀을 풀어줄 금세기 최고의 발견은 과연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우주배경복사 연구의 국내 권위자인 전북대 과학교육학부 박찬경 교수가 Q&A 형식으로 풀어본다.

-중력파의 패턴을 발견했다는 ‘바이셉2’ 망원경은 무엇이고 어떤 신호를 포착한 것인가.
“초기 우주의 정보를 담고 있는 중력파는 우주배경복사라고 하는 태초의 빛 속에 자신의 흔적을 숨겨놨다. 그런데 바이셉2 실험이 우주배경복사의 편광 관측을 통해 숨어 있던 중력파의 미약한 신호를 포착한 것이다. 바이셉2는 우주에서 오는 희미한 신호를 잡기 위해 차고, 메마르고, 안정된 대기 환경이 갖춰진 남극에 설치됐다. 바이셉2는 잠자리처럼 512개의 낱눈들이 밀집한 겹눈 모양의 검출기로 보름달이 1900여 개나 들어갈 만한 넓이의 하늘을 관측했다. 이 장비는 2㎜ 파장의 미약한 빛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다. 총 600여 일의 누적 관측을 통해 바이셉2는 100만분의 1도의 온도 차를 구별할 수 있었다.”

-‘바이셉2’ 실험이 중력파의 흔적을 찾았다고 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우주 대폭발의 가장 이른 순간에 일어난 일들을 짐작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찾았다는 것이다. 대폭발 때 생겨난 거대한 떨림의 흔적인 중력파는 시공간을 흔들며 지나가는 물결과 같다. 이를 검출했다는 것은 우주의 급팽창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는 뜻이다. 중력파가 존재한다는 것도 큰 뉴스지만, 우주가 태어난 바로 그때 일어났던 무언가에 대한 실험적 증거가 확보됐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바이셉2가 측정한 중력파의 세기는 급팽창 시기에 우주의 에너지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가늠케 해준다. 앞으로 다양한 공간적 규모(파장)에서 중력파의 높낮이를 측정할 수 있다면 급팽창 현상의 구체적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초신성 폭발, 블랙홀끼리의 충돌과 같은 격렬한 사건에서 발생된 중력파를 직접 검출하려는 노력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중력파의 존재는 인플레이션 이론과 어떻게 연결되나.
“인플레이션 이론은 우주가 태어난 지 10의 33제곱분의 1초쯤밖에 안 되었을 때 어떤 이유로 급격한 팽창의 단계를 겪었다는 단순한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다. 우주가 거시적으로 비슷하고 평탄한 까닭을 설명하지 못했던 기존 대폭발 우주 모형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1980년 미국 MIT의 앨런 구스 교수가 제시한 이론이다. 찰나의 순간에 급팽창해야만 모든 물질이 처음과 같이 균일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행성·별·은하 등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천체들과 이들이 모여 이루고 있는 거대한 구조들은 모두 물질이 중력으로 뭉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물질이 완전히 균일하게 퍼져 있으면 별이나 은하가 생겨나지 못하기 때문에 초기 우주에는 씨앗 역할을 하는 미세한 물질 요동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 요동은 우주가 태어났을 때 생겨났던 양자요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급팽창을 일으키는 스칼라장과 중력장에는 각각 양자요동이 존재했다. 스칼라장의 요동은 물질의 요동과 관련돼 있으며, 이 요동이 결국 중력 수축하여 우주 거대구조를 형성하였다. 앞에서 말한 중력파는 중력장의 요동을 뜻하며, 시공간을 흔들면서 빛의 속도(1초에 30만㎞의 빠르기)로 지나가는 물결 같은 파동이다.”

-우주배경복사의 편광은 어떤 현상을 말하는 것인가.
“먼저 우주배경복사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우리 우주는 약 138억 년 전 극도로 뜨거운 상태에서 대폭발과 급팽창을 겪으며 생겨났다고 한다. 태초의 우주 속에는 빛·전자·양성자와 같은 수많은 기본 입자들이 서로 뒤섞여 충돌하며 뜨겁게 달궈진(열적 평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태어난 지 3분이 지나는 동안 핵 합성으로 기본적인 원자핵들이 만들어졌다. 팽창하며 식어가던 우주의 온도는 나이가 38만 년 정도 되었을 때 약 3000도 정도로 내려갔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전자는 양성자와 서로 달라붙게 돼 중성수소를 형성했다. 빛과 숱하게 충돌하던 전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빛은 물질과 더 이상 부딪치지 않고 자유롭게 우주 공간으로 퍼져 나갔으며, 본래의 성질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채 아직까지도 우주를 떠돌아다니며 식어가고 있다. 우주 전체에 균일하게 퍼져 있는 이 빛을 ‘우주배경복사’라고 하며, 1965년 펜지어스와 윌슨이 처음 발견했다. 현재 영하 270.3도(절대온도 2.7K)의 극도로 차가운 빛으로 전 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배경복사는 대폭발에 의한 우주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직접 증거로 생각된다.
이후 우주의 나이가 4억~5억 년에 이르러 중성수소들이 중력수축하여 최초로 별과 은하가 만들어졌고 138억 년이 지난 현재 우주는 행성·별·은하·은하단·거대공동·우주거대구조 등 다양한 천체들로 가득 차게 됐다.
모든 빛은 편광을 지니고 있다. 편광은 빛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진행 방향에 수직으로 (전기장이) 진동하는 현상을 나타낸다. 빛을 내는 보통의 광원은 여러 방향으로 편광된 빛이 뒤섞여 있어서 편광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편광은 우리 실생활에도 자주 활용된다. 햇빛은 대기의 분자와 부딪혀 편광을 띠게 된다. 이때 편광 선글라스를 쓰면 특정 방향으로 편광된 빛이 걸러져 눈부심을 줄일 수 있다. 우주배경복사는 거의 무편광의 빛이지만 편광된 빛이 약간 포함돼 있다.
중력파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주에 퍼진 차가운 빛은 약하게 편광돼 있다. 이것은 물질 요동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2002년 데이지(DASI) 실험이 검출에 성공했다. 이번에 바이셉2 팀은 물질 요동이 일으키는 편광과는 성질이 전혀 다른, 더욱 희미한 신호를 포착하였으며,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자료를 시험한 결과, 이 미약한 신호는 우주 초기의 중력파가 우주배경복사 편광에 남긴 흔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박찬경 전북대 과학교육학부 교수 parkc@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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