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데탕트의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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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크렘린 당국은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하로프 박사의 출국을 금지함으로써 소련이 추구하는 데탕트 정책의 위선과 한계성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이와 관련, 소련 공산당의 이론가라는 보리스·포노마레프는 18일 헬싱키 협정의 인도적 조항이『소련의 안전』을 위협할 경우에는 그 적용이 유보된다고 부연했다.
결국 크렘린은 데탕트가 세계적화를 위한 이데올로기 투쟁의 완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자인하고 나선 셈이다.
미-소 데탕트의 진전과 헬싱키 회의 등 이른바 화해의 조류가 유행처럼 대두된 이래, 적잖은 서구인들이 소련 공산주의의 이단박해가 완화되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고 환상도 했었다.
그러나 크렘린이 생각하는 데탕트란 자기들이 2차 대전 이후 점령한 동구 등 공산세력권의 독점적 지배권을 미국더러 승인하라는 선에서 맴돌고 있음을 보증한 셈이다.
미국과 서구는 데탕트를 인적·문화적 교류라는 측면에서 바라본 나머지 크렘린의 문화통제 완화를 기대하여 소련의 요구를 들어준 셈이 되었다.
그러나 일단 자기들의 세력권을 인정받은 크렘린은 헬싱키 협정을 유린하고 동구와 자국 내에서의 문화통제를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단박해를 강화하고 서구 공산당의 강경 노선 추구를 요구하는 등 공산당의본질을 노골화하기 시작했다.
브레즈네프는 지난 여름휴가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온 직후 서구 공산당의 의회주의를 비판한 자르도프의 강경 노선을 지지함으로써 데탕트외교 내부에서의 소련 자유파 지식인들의 『춥고 어두운 겨울』을 발단시켰다.
포드 미국 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이 크렘린의 비위를 거슬릴까 보아 솔제니친과의 면담을 거절하는 테탕트 하에서 소련의 자유인들은 지금 유례없는 무력감과 고독 속에서 박해받고 있다.
자유 파의 동인지인「자미스타트」는 지난 5월에 35호가 발간된 후 침묵하고 있으며, 『나의 증언』의 작가 마르첸코가 기소되었고, 수학자 프류시치가 정신병원에 수용 당했다.
이에 대해 미국과 서구의 양심은 이렇다 할 현실적·도덕적 능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사하로프와 막시모프 등 자유인들의 인권을 존중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묵살하는 데탕트란『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고 어느 미국인 극작가는 개탄했다.
이『영혼 없는 육체』의 빈 껍데기에 대해 뒤늦게나마 미 상원 일부의원들이 항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런가 하면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서구 공산당들도 국내정치상 효과를 노려 크렘린의 이단박해를 중지하라고 요구하고 의회주의노선을 재확인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서구든 동구든, 또는 소련 안의 그것이든 공산당이란 본질상 다 똑같은 것이다. 공산주의는 고대나 중세의 종교처럼 철저하게 보편적임을 자처하기 때문에 다른 이념의 병 존을 원리적으로 용인치 않는다.
때문에 해빙이다, 데탕트다, 의회주의다 하는 것들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무장을 해제하여 폭력을 쓸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을 벌자는 전술에 불과하다.
이제 고독한 항의를 제기하던 1만여 소련 자유 파 인사들과 사하로프 박사에 대해 자유세계의 도덕적 양심은 무언가 한마디 대답할 때가 온 것 같다.
크렘린과의 데탕트를 추구해 온 키신저 외교의 득실을 냉정하게 평가하여 그것이 과연 자유세계의 방위능력과 공산권내의 자유인들을 위해 얼마나 보탬이 되었는지 되새겨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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