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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과 「반백」…다시부른 『전송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한국전쟁 고아들의 제주도공수작전을 그린 영화 『전송가』의 주인공 「딘·E·헤스」퇴역 미공군대령(58)이 17일 하오 참전용사 한국재 방문단의 일원으로 내한. 지금은 20대의 성인이된 옛 고아들과 감격의 해후를 했다.
공항에는 공수작전당시 「헤스」대령을 도와 한국보육원을 설립, 공륜고아들을 돌보았던 황온순여사(73·현 한국보육원장)와 원생30여명이 출영, 옛 은인을 맞았으며 꽃다발에 묻힌 반백의 「헤스」대령은 원생들을 끌어안고 『오! 마이 선』을 연발하며 감회에 젖었다.
「헤스」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6·25가 터지자 미제5공군이 처음으로 한국공군에 F-51 「머스텡」전투기를 인도할때 이를 지원하기 위한 의용병모집에 당시 소령으로서 다른 9명의 조종사와 통신 및 정비장교·사병등 1백명과 응모하면서 부터였다.
제5공군은 50년7월10일 이 부대를 잠정적으로「바우트·원」이라 명명했고 그해 8월15일에는 정식으로 한국공군고문단으로 창설되었으나 「헤스」부대로 더욱 유명했다.
당시 인천에는 전화로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 9백여명이 후송되어 피난선편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며칠이 지나는 동안 추위와 굶주림으로 많은 수가 죽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참상을 보다못한 미공군 군목은 「헤스」대령에게 지원을 요청, 「헤스」대령은 소속부대사령관인 「패트리지」소장에게 이 사실을 호소, 전투기 17대를 동원, 사상최초의 고아공수작전이 시작되어 9백여명의 고아를 인천에서 제주도로 피난시켰다.
전후에도 57년, 60년, 63년 세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한 그는『인천과 제주도 땅을 다시 한번 밟아보고 싶다』며 『한국은 영원한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헤스」대령과 함께 내한한 퇴역 미해병중령 「올빌·N·올니」씨는 인천상륙작전중 제일먼저 진격, 교두보를 확보하고 철수시는 최후까지 남아 부두파괴의 임무를 수행했던「쇼·파티」부대의 소대장.
그는 인천상륙작전에 수훈을 세운후 다시 한강도강작전을 거쳐 원산·석남까지 진격했던 참전소 해병대의 영웅이었다.
예편후 현재 「시애틀」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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