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그러고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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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발에 사마귀가 생겨서 수술로 없앴습니다. 그리고 나서 2주일쯤 지났는데 수술 부위가 간지러워요.” “좌변기에 칫솔이 빠졌는데 실수로 물을 내렸어요. 그리고 나서 물이 안 내려가네요.” “동강에서 래프팅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맛있는 음식점 좀 알려주세요.”

 이처럼 주위에서 ‘그리고 나서’라는 표현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쓰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나서’는 ‘그리고’와 ‘나서’라는 두 단어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는 단어와 구, 절, 문장 따위를 병렬적으로 연결할 때 쓰는 접속 부사이고 ‘나서’는 ‘보조동사’인 ‘나다’에서 활용한 것이다.

 본동사와 연결되어 그 풀이를 보조하는 것이 보조동사이므로 이 ‘나다’ 앞에는 동사가 와야 한다. 예를 들어 ‘점심을 먹고 나서’ ‘공부를 하고 나서’ ‘일기를 쓰고 나서’ 등의 사례를 보면 ‘나서’ 앞에 ‘먹다’ ‘하다’ ‘쓰다’ 등의 동사가 온 것을 알 수 있다. 이 경우의 ‘나다’는 앞말이 뜻하는 행동이 끝났음을 나타내는데 ‘-고 나다’의 구성으로 쓰인다. 어쩌면 ‘그리고’가 ‘-고’로 끝나기 때문에 구성상 ‘그리고 나서’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고’는 동사가 아니라 접속 부사이므로 ‘나서’ 앞에 올 자격이 안 된다. 따라서 ‘그리고 나서’라는 형태는 사용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고쳐야 할까. ‘그러다’란 단어가 있다. 이것은 ‘그리하다’의 준말인데 ‘상태, 모양, 성질 따위가 그렇게 되게 하다’의 의미를 지녔다. 간단히 말해 ‘그렇게 하다’란 뜻이다. ‘그러다’는 동사이므로 ‘나서’의 앞에 와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래서 “발에 사마귀가 생겨서 수술로 없앴습니다. 그러고 나서 2주일쯤 지났는데 수술 부위가 간지러워요” “좌변기에 칫솔이 빠졌는데 실수로 물을 내렸어요. 그러고 나서 물이 안 내려가네요” “동강에서 래프팅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맛있는 음식점 좀 알려주세요” 등으로 바꾸면 된다. 때로는 ‘그러고’ 하나만 써도 괜찮은 경우도 많다.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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