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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세」영합, 비난 속 불의 중국문학자가 소개 금년 『노벨』문학상에 추천됐던 두 중공작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프랑스」의 중국문학자들이 금년도 「노벨」문학상 후보로 2명의 중공작가를 추천했던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추천작가는 71세의 이불감과 79세의 심안수. 추천의 변은 「아시아」인에게는 항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첫째 이유이며 「펄·벅」이 『대지』로 1938년도에 수상했으나 중국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소련에 흥정이나 하듯이 「파스테르나크」를 보내라, 「숄로호프」에게 상을 준다, 「솔제니친」을 내보내라는데 반기라도 들듯이 7억 인구의 중공에 한번쯤 기회를 줄만하다는 것이다. 또 추천된 작가들은 1930년대의 혁명적이라기 보다는 낭만적인 정열을 작품에 담았으며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고발했다는 점에서도 평가할 만 하다는 설명이다.
먼저 이는 관리의 아들로 철저한 무정부주의자이다. 「아나키스트」의 조상 「바쿠닌」의 「바」와 「크로포트킨」의 「킨」을 따 「바킨」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질 만큼 무정부주의에 열광한 이는 「파리」에 유학한 일도 있었다. 1927년 22세의 유학생으로 쓴 최초의 소설은 『파괴』-국민당 군이 「쿠데타」를 일으킨 후 격동하는 상해를 무대 삼아 「테러」가 난무하는 사회상을 묘사했다. 귀국 후 『사람』과 『고뇌』의 3부작을 출판, 공산측이나 국민당측의 호평을 받지 못한 대신 학생들에겐 영웅이 되었다. 일본에 잠시 건너갔으나 중·일 전쟁발발로 귀국, 상해에 있다가 모택동 군대를 맞았다.
그는 이 때 상해인민위원에 뽑혀 작가생활을 중단했으나 문화혁명 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무정부주의의 검은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썼다고 홍위병의 비난을 받았다. 그후 그의 행방은 수년간 묘연. 최근 그의 이름이 다시 등장, 복권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자아내고 있다. 즉 한 농촌의 집단농장에 관한 「르포르타지」밑에 그의 서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 역시 중공의 수많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는 운명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으며 그의 작품이 「파리」에서 번역된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심은 단 한편의 소설 『자정』이 1930년대에 번역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것은 대작으로 통한다. 「에밀·졸러」에서 「드라이저」를 잇는 자연주의계열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밖에 『환멸』『추구』등의 작품이 있으나 불역되지는 않았다. 1944년에 연안의 공산당에 가담했으나 1945년에 「모스크바」에 있으면서 「소련의 동지」가 된 사이로 유소기에 의해 문화상으로 발탁된 그가 문화 혁명 때 온전할 리가 없었다. 3년간 잠적 끝에(?) 최근에 공식석상에 나타난 것으로 되어있는 그의 작품은 오사혁명부터 일본침공까지의 중국을 그림처럼 묘사한 점이 높이평가 되는 것 같다.
공자와 『수호지』까지 비판당하는 난세의 중공문단이지만 중공이란 거대한 괴물을 무시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 또한 추천한 이곳 중국문학가들의 생각인 것 같다. 물론 「펄·벅」에 앞서 노신이 「노벨」상을 못 받은 아쉬움도 외면할 수 없으나 이것을 하나의 유행인 중공바람이라는 비판도 없지는 않다. <파리=주섭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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