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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의 술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울의 대학가 주변에 경양식집·「살롱」 등이 즐비하게 생겨 청소년들의 퇴폐적 「미팅」장소로 변해가고 있다한다.
대학초년생 이하의 남녀청소년들이 50쌍씩 떼를 지어 어둔 「사이키델릭」조명 속에서 대낮부터 「고고」를 추고 술을 마시고…. 그러나 그들 편에서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이들의 대부분은 재수생이다. 입시에 떨어졌다는 좌절감을 안은 채, 몇 년씩이나 수험공부를 해야하는 이들은 달리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다는 얘기다.
『현대인은 조포한 행위를 전면적으로 억제 받고 있다. 이것이 오히려 인간의 문화에 결함을 낳게 해주고 있다.』
이렇게 서독의 「아이벨스펠트」박사가 2년 전에 「뉴요크」에서 열린 국제의학「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일이 있었다.
가령 A학생이 B학생에게 분노를 느꼈을 때, B를 때려 누이고 나면 올라갔던 혈압이 정상에 돌아온다. 이렇듯 분노와 좌절의 「스트레스」를 재수생들은 달리 풀 길이 없는 것이다.
고교상급생들의 정신상태도 거의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닥쳐올 시험의 공포, 그리고 부모의 몰이해한 채찍이 가중시키고 있는 「스트레스」로부터의 도피처가 없는 것이다.
대학초년생들에게는 또 밤낮 없이 수험준비에 몰리던 생활이 끝났다는 허탈감이 있다. 그리고 대학은 아직 그들에게 마음을 잡아줄 만한 곳이 못되고 있다. 대낮부터라도 「고고」라도 추지 않고서는 허전한 마을을 달랠 길이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네 교육제도만 탓할 것도 아니다. 「D·가볼」의 『성숙사회』에서 보면 경제의 고도성장은 정신의 황폐라는 끔찍한 함정을 안고 있다.
다시 말해서 물질과 정신의 「언밸런스」가 늘어가며, 그 결과 EQ(윤리지수)도 상대적으로 저하된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얘기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회인 미국에서 「알콜」중독이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되어있다. 그리고 미국의 대학가에서는 마리화나가 유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교생 사이에서의 탈선은 그렇게 심하지가 않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길이 그들에게는 어느정도 열려있기 때문일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가정은 우리네 가정보다는 훨씬 자녀중심적인 것이다. 적어도 자녀들의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모들이 많다. 우리 나라에서는 경제의 성장이 부모의 마음을 먼저 황폐시켜 놓았다.
그리하여 용돈을 많이 주고, 가정교사를 두고 과외수업만 시키면 다 끝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리하여 가정은 조금도 우리네 청소년들에게는 아늑한 생활의 자리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국에서는 대학가의 접객업소들의 단속에 나섰다 한다. 한동안 퇴폐미팅이 잠잠하게 될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다음에 그들은 어디로 발길을 옮길 것인지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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