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도우면 청탁 받았나 뒤져 … 감사원부터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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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을 바꿔야 규제 개혁을 할 수 있다.”

 17일 취임해 본지와 첫 인터뷰를 한 권태신(65·사진) 신임 한국경제연구원장의 일성이다. 경제관료 출신인 그는 공직 사회를 잘 안다. 그런 그가 지목한 규제 개혁의 최대 걸림돌은 감사원이었다.

 -왜 감사원인가.

 “공무원이 제일 무서워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국정원·검찰까지 감사할 정도로 막강하다. 산업은행의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감사원이 선진화돼야 공무원의 복지부동, 무사안일이 없어진다.”

 -뭘 바꿔야 하나.

 “ 감사원은 공무원이 기업에 무엇을 안 해줬는지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거꾸로 기업을 위해 공무원이 해준 게 뭔지를 들여다본다. 특혜를 잡겠다는 건데, 이래선 공무원이 기업 중심으로 생각하고 규제를 풀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공무원이 기업에 건축 허가를 안 내주면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없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기업 편익을 위해 허가를 내주면 감사원이 청탁을 받았는지 등을 들여다본다. ”

 실제로 일선 공무원들은 감사가 두려워 기업 부담을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 계약에서 납기일을 지키지 못했을 때 내는 지체상금이 대표적이다. 국내 기업은 이유와 상관없이 납기를 못 맞추면 지체상금이 무한대로 쌓인다. 반면 외국 업체에는 10% 상한선이 적용된다. 역차별 규제다. 기업들은 결국 소송에 매달리고 법원은 공사대금의 10~20% 선에서 지체상금을 감경해준다. 이런 식의 관례가 있어 공무원이 처음부터 감경해줘도 문제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감사다. 조달 업무를 하는 한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도 문제를 너무 잘 안다. 하지만 자기가 판단해 지체상금을 감액·면제하면 나중에 감사원 감사에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권 원장의 감사원 질타가 괜히 나오는 얘기가 아닌 것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감사원은 누가 감사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며 “감사원이 21세기에 맞게 바뀌지 않으면 대통령이 외치는 규제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후배 공무원을 향한 쓴소리도 했다. 그는 “공무원이 국민과 기업 앞에서 목에 힘주도록 만드는 게 규제”라며 “해줄 수 있는 일도 모호한 규정 뒤에 숨어서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규제 개혁이 가장 필요한 분야로는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서비스 산업을 들었다. 권 원장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던 영종도에는 10년 넘게 빈 건물만 있다”며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병원·학교를 외국에서 유치해오겠다고 했지만 규제 때문에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 규제 개혁의 최대 수혜자는 국민이다. 기업이 잘 되면 일자리가 늘고, 세금도 늘면서 복지 투자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예 기자

◆권태신=민간경제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원장 . 장관급 관료(국무총리실장) 출신이 민간 경제연구원장을 맡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기획재정부 차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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