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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장편소설 『이마』는 분명히 우리에게 새로이 던져진 문제작이다. 이 소설은 이조중엽, 그것도 을사사화를 전후로 대윤과 소윤의 외척들이 정권을 농단하여 권력쟁탈이 혹심한 정국과 피폐한 민생을 배경 삼은 역사소설이다. 『이마』는 이 소설의 주인공의 별명이다.
그는 출신이야 여하튼 그 시대의 대표적 망나니다. 도망친 자기계집을 찾아 헤매는 이 떠돌이는 박치기를 잘하는데서 「이마」라 불린다. 그는 현실적 인간의 모습을 전형으로 하고 있다. 규격화된 신분사회에서 요구되는 기존질서를 철저히 냉소한다. 권모와 수탈로 미만된 사회체제가 그를 밥먹여주지 않는데서 그는 본능적으로 행동할 뿐이다.
그의 인간으로서 드러내는 윤리정신은 지극히 소박하고 순수하나 이른바 붓과 입으로 사는 선비라는 인간을 몹시 혐오한다.
이마의 방랑과 부도덕한 삶의 과정은 우연하게도 퇴계 선생과 연결되고있다. 작가에 의하여 퇴계 선생은 일반 사인계층과 국정을 소개하는 유력한 매체로 구사되고 있다. 이마에 의하여 퇴계의 인간됨이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때문에 전편에 흐르는 기조가 흡사 위인전기 같기도 하다. 이 곳에서 그의 인품, 그리고 그의 입덕입공의 면모는 약연하다.
사칠론을 중심한 기대승과의 서신왕복조차 요사스러운 편지이며 씨도 먹지않은 이야기라고 여기는 이마는 그러나 인생의 황혼길에서 퇴계의 문중으로 접근한다. 여기서 퇴계의 포용적인 인품이 양각된다. 야인인 이마에 의해서 퇴계가 드러나고 퇴계에 의해서 미천한 이마가 서민생활을 동반하며 표표된다.
이는 분명히 노련한 홍탁의 묘사법이다. 구름 때문에 달이 돋보이고 달 때문에 구름이 살아나듯 이마와 퇴계는 전편에서 생동하고 있다. 위인전도 아닌 것이 위인됨을 훨씬 정직하게 드러내어 있고 망나니도 어쩔 수 없었던 시인의 씨앗이나 그의 천진성을 간과하고있지 않다. 역사적 실존인이 허구인과 어울려 인간의 진실을 드러내고있기도 하다.
소설작법에 있어서도 새로운 「모드」의 시금석이겠고, 내용과 형식에서 모두 주목하게 한다. <이남영(철학·서울대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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