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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무실…「오나시스」유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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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줄기찬 정력과 자기과시 탓으로 「아리스토텔레스·오나시스」는 현대의 신화처럼 되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요트」의 소유자이며 「가장 매력적인 여자」(재키)의 남편으로서 그는 국제적인 명성을 누렸다.
지난 3월 「오나시스」가 69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죽자 신문들은 한결같이 그의 재산이 10억 「달러」는 될 것이라고 추측했으며 가장 신중한 사람도 5억 「달러」는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산 1억불추산>
그의 상속자인 「크리스티나」양은 즉각 「세계에서 가장 돈많은 여자」로 불렀다. 그러나 「오나시스」의 유산은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어 왔음이 밝혀지고 있다.
사실 「오나시스」는 생각만큼 부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나시스」는 선박소유주일뿐 아니라 「브라질」의 유아식품공장, 남아의 주석광산, 「리히텐슈타인」의 「택시」 운수업등을 교묘하게 위장 운영하는 1인복합기업지배자로 생각됐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허황된 소문이었던 것이다. 그는 68년에 「스위스」의 한 은행을 샀었고 「벨마스프」의 한 조선소 주식을 사들인 적이 있지만 재미를 못보고 되팔았다. 「맨해턴」5번가에 우뚝 솟아있는 「올림픽·타워·빌딩」은 빚투성이며 그나마도 그가 갖고있는 주식은 25%에 불과하다.
57년 「오나시스」가 「그리스」정부로부터 사들인 「올림픽」항공은 개인소유 항공사로는 세계최대였다. 그러나 「올림픽」항공은 한창시절에 겨우 적자를 면하는 경도였다. 그는 죽기 몇달전 이 항공사를 실비만 받고 「그리스」정부에 되돌려주려는 교섭을 하고있었다.
「오나시스」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선박운수업이었다.
25세땐인 31년 12만「달러」를 들여 사들인 6척의 낡은 화물선으로 시작한 그의「올림픽」해운은 지금 54척의 배를 갖고있으며 총t수로는 전세계 해군의 총t수를 능가한다. 「오나시스」는 「그리스」인다운 고집으로 대형유조선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38년에 그가 소유한 1만5천t짜리 유조선은 지금봐서는 골무만큼이나 작은 것이 되어 버렸지만 당시로는 세계 최대였다. 67년 「이스라엘」-「이집트」의 6일쟁전으로 「수에즈」운하가 봉쇄되자 「페르샤」만의 석유를 운반하는데 희망봉을 돌아 6천 「마일」을 더 항해해야했다.

<「인플레」로 타격>
「오나시스」는 이러한 필요에 대처하기 위해 21만5천t의 초대형유조선 10척을 주문했다.
그는 t당 1개월용선대금을 l.1「달러」로 계산하면 7년간의 대부금상환이 끝난뒤부터 15년간 1억2천5백만 「달러」를 벌수 있을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략상의 착오였다. 「인플레」는 「오나시스」의 계산을 엉망진창으로 짓밟았으며 그의 유조선단은 매년 4백만 「달러」의 적자를 보게됐다.
73년 세계적인 호황을 타고 1억 「달러」가량의 돈을 번 「오나시스」는 두번째 갈못을 저질렀다.
그는 3억6천만 「달러」를 들여 t수를 늘리기로 했으며 그중 두척은 42만6천t의 초특대형 유조선이었다. 73년말 「아랍」이 석유금수조치를 단행했다. 기름값은 오르고 석유수요는 줄었다. 이렇게되자 새로운 초대형 유조선은 1척도 필요 없게 됐을 뿐 아니라 기존선단의 3분의1이 남아돌았다. 그는 주문한 배를 취소하는 데만 1천7백만 「달러」를 써야했다. 그는 또 선박건조비로 은행에 1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선단은 3억 「달러」로 평가되지만 실제로는 2억「달러」에 상당하고 적립금을 포함해도 2억5천만 「달러」를 넘지못한다.

<은행융자빚많아>
만약 그가 소유한「리베리안」해련이 8척의 유조선을 담보로 다시 9천만 「달러」의 재융자를 받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2억5천만 「달러」라는 것조차도 지나친 평가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오나시스」의 딸 「크리스티나」가 상속받은 재산은 대기업왕국이 아니라 그 잔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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